경북 의성군 단촌면 등운산 계곡에 자리잡은 고운사는 다양한 이야기와 문화재를 품은 곱고 큰 절이다. 통일신라 신문왕 원년(681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해동화엄종의 시조 의상대사가 연꽃이 반쯤 핀 형상을 한 명당이라고 평가했다.

애초 절 이름은 높은 구름과 함께 있다고 해서 고운사(高雲寺)였다. 최치원 선생이 승려 여지·여사와 가운루·우화루 창건을 주도하면서 최 선생의 호를 따 고운사(孤雲寺)로 개칭했다고 한다. ‘가허루’라고 불리기도 한 ‘가운루’는 지난해 7월 보물로 지정됐다. ‘구름을 타고 간다’는 뜻처럼 계곡 위에 지어 자연과 조화를 이뤘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이면서 주변 경치를 즐기는 누각이기도 하다. 카페로 쓰인 우화루의 호랑이 벽화는 방문객 눈길을 끌었다. 호랑이 눈이 사람 움직임을 따라다녔다.

조선 영조 어첩을 보관하고 고종 장수를 빈 원당인 연수전 역시 국가문화유산이다. 절과 어울리지 않게 내부는 용과 봉황이 춤을 출 정도로 화려하다. 사람이 죽어 염라대왕 앞에 갔을 때 고운사 명부전에 가봤는지를 물어본다는 전설이 있다. 가 봤으면 죄를 덜어준다고 할 정도로 지장보살 영험이 깃든 곳이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십대왕의 모습이 다른 사찰보다 화려하면서도 위엄 있게 느껴진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사명대사가 고운사를 근거지로 항쟁을 펼쳤다. 식량을 비축하고, 부상 입은 승군을 치료했다. 일제강점기 절 부속 지방학림 학생들이 1919년 3월 만세운동을 주도하면서 학교가 강제 폐교되기도 했다.

고운사는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다녀간 봉정사 등 60여 곳의 사찰을 말사로 관장한다. 일주문 이름 조계문이 암시하듯 우리나라 선종 맥을 잇는 곳이다. 또한 최치원을 기려 해마다 최치원문화제가 열린다.

지난 22일 오전 11시25분께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묘소에서 시작된 불이 24일 오후 5시께 고운사를 덮쳤다. 가운루와 연수전 등 18채가 전소됐고 명부전과 대웅보전 등 11채는 화마를 피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깨진 범종이 기와와 흙더미 속에서 외로이 서 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불이 났지만 이번처럼 큰 피해를 입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스님과 신도들은 부처를 잘 모시지 못한 자신들을 탓하며 눈물을 흘렸다. 천년 공덕이 한 사람 부주의로 허무하게 무너졌다. ‘산불, 장난이 아니라 재해입니다’는 산불조심 문구가 새삼 가슴 깊이 박힌다.

최현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