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설을 보내고 나니 또 한 살 나이를 먹은 게 실감이 난다. 해가 바뀌니 새해인가 보다, 3월이 되니 봄이 시작되나 보다 받아들임이 편안해졌다.

퇴직을 했으니 새해 업무계획을 세우지 않아 좋고 나이 예순이 넘으니 호들갑 떨지 않아 좋다. 퇴직과 환갑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인생의 한고비를 넘기는 것인데 이걸 지나면서 정말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난 요즘 아주 천천히 가고 있다. 인생이란 오늘의 반복일 테니 그 오늘을 그냥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려고 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왜 벌써 노인처럼 말하느냐고 핀잔을 받기도 하지만 이제 이런 느림이 좋다. 나이 탓일 게다. 나이의 맛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일 거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닐 때는 나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새벽에 출근했다가 태풍, 폭우, 선거 개표방송 등 특별 생방송이라도 생기면 자정 넘어 퇴근을 하고 365일 쉬는 날이 없는 방송이다 보니 공휴일에도 전담 방송을 하러 출근해야 했다. 그땐 주 6일 근무여서 일요일 당직이라도 하게 되면 꼬박 2주일을 출근하며 아이를 챙겨야 했다. 갑자기 육아도우미가 오지 못하는 날엔 아이를 데리고 출근한 적도 있어서 어지러울 만큼 숨 가쁜 시간이었고 잠이 부족해 졸음운전도 다반사였으니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그땐 빨리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얼른 자라 제 앞가림을 하면 나는 골방에 들어가 깊은 잠을 자 보는 게 소원이었다. 해결 방법은 시간이 빨리 지나 늙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난 환갑이 반가웠다. 그런데 요즘 누가 환갑을 말하느냐며 계속 활동해야 늙지 않는다면서 석사학위를 따놔라, 대학에서 강의라도 해야지, 아나운서 학원을 해봐라 잘 될 텐데 부추기는 분들의 말에 솔깃해 퇴근 후 야간 대학원을 다니며 석사 학위도 받고 스피치 자료를 모으며 강의 준비도 했다. 그러나 퇴직과 함께 환갑을 맞으면서 6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60이 아주 멀 것 같았는데 어느 틈에 내 곁에 와 버린 거다. 그리고는 “제가 환갑입니다 제가 환갑이라고요” 떠들고 다녔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는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환갑이다 내가 환갑이야. 육십 갑자가 다시 돌아오니 이제야 지난 세월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고 노년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지난해 가을, 인생플러스 강의를 통해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를 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에 대해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젊을 때부터 노후준비를 잘 해두면 노년이 행복하듯 살아있을 때 죽음에 대한 준비를 잘 해두면 생의 마지막도 잘 맞이할 것이다. 오랫동안 서양인들의 삶을 떠받치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도 죽음을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도 단지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것도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서 억지로 연명의료를 하지 말라는 나의 의지 표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