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일광신도시에서 지난 10일 발생한 대낮 은행 강도미수 사건은 몹시 찜찜하다. 은행 지점을 털려는 발상 자체가 무모하다. 범인은 비닐봉지로 싼 흉기를 겨누며 5만 원짜리 지폐를 준비한 가방에 가득 담으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그 흉기가 공룡 모형 장난감 물총이었다. 고객과 직원들을 무릎 꿇게 한 공포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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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기장군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미수 사건 범인이 사용한 공룡 모형 장난감 물총. 국제신문DB |
구속된 범인은 자영업을 하다 실패한 30대 가장이다. 어설픈 범행이라곤 하나 지은 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은행 강도미수에 합당한 처벌은 당연하다. 최악의 선택은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가장의 부재는 가정의 위기다. 숱하게 많은 자영업자가 위기를 겪으면서 희망을 부여잡고 버틴다. 범인의 경거망동은 자영업자에게도 누를 끼친 셈이다. 다만 공룡 장난감 흉기와 은행 강도라는 비대칭 이미지가 발신하는 신호를 놓치지는 않았나 살펴봐야 한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지는’ 법(‘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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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대표 관광지인 자갈치시장 거리가 한산하다. 고물가와 내수침체, 그리고 계엄 여파로 자영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신문DB |
최근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저녁 모임을 한 사람이라면 거리가 왜 이렇게 휑하지? 하고 느끼기 십상이다. 지난 주 회센터를 찾았을 때 그랬다. 그나마 회센터 1층엔 제법 손님들로 붐볐다. 주인에게 “자갈치에 온 사람이 여기 다 있군요” 하고 인사했더니, 대답이 예상 밖이었다. “요즘 손님이 경기 좋을 때의 절반도 안 돼요. 오가는 손님끼리 어깨를 부딪히고,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지어야 정상이죠.” 고물가와 내수 침체, 계엄 사태가 빚은 현실이다.
따지고 보면 자영업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자영업자 4명 중 3명 꼴로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번다는 자료가 지난해 9월 나왔다. 지난 2022년 개인사업자 종합소득세 신고분 1146만4368건 가운데 75.1%인 860만9018건이 월소득 100만 원(연 1200만 원) 미만이었다. 이 가운데 소득이 전혀 없다는 ‘소득 0원’ 신고분도 94만4250건으로 8.2%에 달한다. 지난 연말엔 자영업자 10명 중 1명 꼴로 폐업한다는 통계가 이어졌다. 내수 부진에 더해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세대 은퇴 본격화를 앞두고 요란하게 울리는 자영업 ‘비상 신호’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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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주요 상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부산대학교 장전캠퍼스 인근 상가 점포가 임대 알림판을 붙인 채 비어 있다. 국제신문DB |
골목상권을 책임지며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인 자영업자다. 정부가, 정치권이 합당한 해결책을 구하려 나서야 한다. 그게 정책이고 정치다. 그동안 나온 자영업 위기 타개책이 한둘이 아니다. 소비를 진작한다고, 영업 환경을 개선한다고 많은 대책을 쏟아냈다. 자영업자는 체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현장과 괴리가 크다. 온도차가 있기 마련이라고 달래려는 일이야말로 탁상 행정이요,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하는 정치다.
온도차는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당장 오는 20일 여·야·정 국정협의회 4차 회담을 앞두고 입씨름이 한창이다. 정부와 국회, 여야 대표가 탄핵 정국 속 민생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과 국민연금 개혁 방안, 반도체특별법 처리 등에 관심이 쏠린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3일 제안한 35조 원 규모 ‘슈퍼 추경’엔 하늘과 땅만큼 입장이 다르다. 전체 3분의 1가량인 약 13조 원을 들여 국민 1인당 25만 원을 소비 쿠폰으로 지급하되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한부모 가족에 추가 10만 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민생회복 지원금’ 사업이 쟁점이다. 골목상권에 생기를 불어넣자는 취지인 만큼 자영업자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민생 살리기’라 하고, 국민의힘은 ‘현금 살포 포퓰리즘’라고 맞받는 모양새다. 오락가락하는 야당도, 야당엔 무조건 딴지를 걸고 나서는 여당도 오십보 백보다.
이렇게 입씨름으로 허송한 날이 숱하다. 여·야·정이 지난달 9일 국정협의회 대표 4인 체제 구성에 합의한 지 42일 만에 대표 회담이 열린다. 민생을 살리겠다는 추경은 시간 싸움이다. 골든 타임은 여유를 주지 않는다. 여야가 골든 타임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하는 사이 아까운 시간이 물처럼 흘러간다.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는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사정이 이러니 ‘선거 때 보자’며 눈에 쌍심지를 켜는 이들이 늘어난다. 우리 사회에서 자영업자는 나름대로 가정을 꾸리고 사회에서 목소리를 낸다. 시혜가 아니라 세금 낸 만큼 대접해 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헌법재판소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이 막바지다. 탄핵이 인용되면 곧바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자영업자는 민심을 좌우하는 바로미터일 수 있다. 대통령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나름 잣대를 가진 자영업자다. 지금 상황이 곤궁한 듯하나 실제는 옹골차고, 쉽게 마음을 내주는 듯하나 한 표 행사는 엄정한 사람이다. 이들과 온도차를 좁혀야 대권을 꿈꿔볼 수 있다는 말이다.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