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지난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을 부결시켰다.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지 일주일 만이다. 채상병 특검법은 21대 국회에선 폐기됐지만, 야당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특검법 표결을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이 단독 통과시킨 전세사기특별법 등 4개 법안에 대해서도 29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로써 취임 후 7번째로 14건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셈이다.

하지만 야당은 이들 법안 역시 22대 국회에서 재추진한다는 방침이다. 22대 국회도 야당 단독처리-거부권-법안 폐기를 반복할 공산이 크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잦은 거부권 행사를 ‘거부권 통치’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반대로 여당은 야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법안을 단독 처리하는 입법독주를 하고 있다며 야당에 책임을 전가한다. 여야가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소통을 외면한 결과, 21대 국회 법안처리율은 36.6%를 기록하며 이른바 ‘동물국회’로 불린 20대 국회 법안처리율(37.8%)보다 더 떨어졌다.

입법독주와 거부권 남발의 악순환을 지켜보는 국민의 피로도 또한 크다. 보수와 진보 진영 간 주장하는 바가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협상과 타협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선 이런 협치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이태원 특별법 통과를 위해 여야가 합의한 것이 가시적인 성과로 남았다.

이태원 특별법은 협상 가능하고, 채상병 특검법은 안될 이유는 없다. 이태원 특별법은 여야가 쟁점 사안에서 합의를 이룬 덕에 본회의 통과가 가능했다. 애초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정쟁법안, 과잉법안”이라고 하거나 “이미 수사 결과가 나왔고,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새롭게 밝혀진 것이 없다”던 여당의 종전 입장을 감안하면 전향적인 입장 변화였다.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서도 여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 중이고, 그 결과가 미진하면 여당이 먼저 특검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특검법도 야당이 정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태원 특별법의 경우처럼 ‘어제의 정쟁법안’이 ‘오늘의 협치법안’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이태원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4·10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이 민심을 의식한 영향도 컸다.

여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에 대해 야당이 입법 드라이브를 걸면 걸수록 여당은 ‘일하지 않는’ 정당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야당이 일하려는데 여당은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연일 하는 것도 이 같은 노림수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가 연금개혁 안건이나 민생지원금 문제에 대해서도 “여당 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이런 야당을 향해 여당이 정략적이라고 비판을 하더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여당이 협치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22대 국회에선 여당 의석이 108석에 그치면서 야당의 입법강행에 제동을 거는 것이 더 어렵게 됐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이 정치력이다.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손을 맞잡지 못한 것은 서로를 향한 불신의 영향이 컸다. 취임 2년 만에 첫 영수회담이 성사되기 전까지, 윤 대통령은 제1야당 대표를 국정 운영의 동반자가 아닌 범죄자 보듯 했고, 이는 여야 협치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30일 개원하는 22대 국회에 대한 기대가 크다. “특검법을 수용하지 않으면 탄핵”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강 대 강 대치보다는 대화와 소통, 협상이 되는 국회를 기대한다. 여야 모두 협치에 적극 임하는 달라진 모습을 상대에게 각인시키는 작업도 전제돼야 한다. 서로를 향한 신뢰가 있어야만 진실된 대화가 가능하다. 소통 의지는 없이 제 각각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돌아섰던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영수회담 같은 안 하느니만 못한 ‘쇼통’도 지양해야 한다.

김태경 서울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