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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좁쌀 한 알

  • 정상도 기자 jsdo@kookje.co.kr
  •  |   입력 : 2024-05-21 18:46:24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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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 강아지 꼬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강아지풀은 들이나 밭,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강아지풀을 꺾어 친구 목에 대며 간지럼을 태우던 어릴 때 추억이 누구나 있을 법하다. 일본에선 강아지풀을 고양이 앞에서 흔들면 고양이가 재롱을 부린다며 고양이풀이라고도 부른다. 강아지풀이든 고양이풀이든 ‘꺄르르~’ 넘어가는 해맑은 어린이 웃음소리가 떠오른다. 국경이 무색한 게 동심인가 보다.

강아지풀은 볏과 곡물인 조의 원형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오랜 재배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2700년 무렵 중국 신농의 오곡 중 하나였던 것이 그 예다. 쌀이나 보리와 섞어 밥으로 지어 먹거나 엿 떡 소주 과자 등을 만들 때 재료로 쓴다. 찰기가 없는 조는 메조, 찰기가 있는 조는 차조로 나눈다.

좁쌀은 조의 열매인 쌀이다. 몹시 잘고 쩨쩨한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알갱이가 작다. 아주 작은 눈, 또는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을 좁쌀눈, 몸피가 매우 작은 사람이나 소견이 좁고 언행이 자잘한 사람을 좁쌀뱅이라고 하는 데서 그 어감을 짐작할 만하다. 한때 보리 다음으로 많이 재배됐던 작물 대접으로는 영 시원찮다 하겠다.

그런데 세상이 이처럼 깔보는 좁쌀, 그것도 한 알을 아호로 쓴 이가 있다. ‘좁쌀 한 알’(一粟子·일속자), 그 이유가 깊다. “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 내 마음을 지긋이 눌러주는 화두 같은 거야. 세상에 제일 하잘것없는 게 좁쌀 아닌가. ‘내가 조 한 알이다’ 하면서 내 마음을 추스르는 거지.”(‘좁쌀 한 알’·도솔)

강원도 원주 사람 무위당(無爲堂) 장일순(1928~1994)이다.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이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 했던 사람, ‘아침이슬’의 김민기가 아버지라고 여겼던 그다. 왜? 김지하의 말을 빌자면 ‘밑으로 기어라’며 생명·평화 운동을 이끌었고, 그 자신이 “제일 좋은 삶이란 자기 새끼 데리고 이웃 사람과 평화롭게 사는 것 말고 무엇이겠냐”고 했다.

한살림 운동과 생협 운동을 주도하며 ‘같이 살자’한 실천가다. 각자도생 시대에 귀한 죽비다. 22일은 그의 30주기다. 그는 “내 이름으로 되도록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으나 10주기에 맞춰 ‘좁쌀 한 알’이 나왔고, 최근 ‘장일순 평전’(삼인)이 또 나왔다. 그가 남긴 서화로 만든 만년력의 오늘 글귀는 ‘虛心如佛’(허심여불·마음을 비우면 부처와 같다)이다.

정상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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