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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과학을 품을 드라마

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 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
  •  |   입력 : 2024-04-22 18:53:26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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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래되었지만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는 정말로 달이 해를 품는 ‘개기일식’ 장면이 등장한다. 달을 상징하는 세자빈이 과거 기억을 잃어버려, 한 나라의 태양이자 자신이 사랑한 왕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개기일식 날 달이 해를 가려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기억을 차츰 되찾게 된다. 드라마에서 흐름상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얼마 전 미주대륙에서는 7년 만의 ‘해품달’ 우주쇼에 수억 명의 관심이 쏠렸다. 어디 일식의 장관뿐이던가. 바람이 주는 봄꽃의 향기, 한밤중에 떨어지는 별의 소식, 바싹 마른 빨래에서 전해지는 햇볕의 촉감, 빗소리에 묻어나는 한편의 추억.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실로 많은 것들을 얻는다. 우리가 사는 지구이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최근 한 OTT 서비스에서 개봉한 ‘삼체’가 인기다. 과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은근히 문과 감성이라 SF물은 어지간해서는 쳐다보지 않고 산다. 처음부터 진입장벽이 컸던 ‘삼체’. 어땠느냐고? 이름처럼 세 번까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은 볼 수 있을 것 같다. ‘삼체’는 SF 소설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 수상 류츠신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목인 ‘삼체’는 세 개의 물체가 중력으로 서로를 당기며 움직일 때 그 궤도를 구하는 고전 역학 문제에서 비롯됐다. 제목부터 모든 것이 물리학스럽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삼체’를 읽고 백악관의 일상사가 사소하게 느껴졌다고 말했을 만큼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아울러, 진지하게 곱씹고 성찰할 만한 요소가 곳곳에 있다. 이 드라마는 ‘인류의 외계 행성 침공 방어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만, 인간과 지구와 우주의 관계를 훑으면서 과학과 철학, 종교와 정치에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곱씹어 답을 구하는 재미가 있다.

‘삼체’가 ‘찐 이과’들의 호평을 받고 있지만, 주말은 역시 선남선녀 배우들의 달콤한 로맨스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다. 주인공이자 뇌종양에 걸린 재벌가 여주인공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설정이다. 국내 의료진이 치료를 포기하자 ‘CAR(키메라 항원 수용체)-T세포’ 치료를 받기 위해 독일의 한 암센터를 찾아가 연구 기금을 내는 조건으로 치료를 받는다. 백혈구 수치가 낮아 치료가 어려운 상황으로 그려졌지만, 바이오 기업들은 CAR-T세포 치료제가 드라마에 언급되면서 많은 사람에게 차세대 항암제로 각인되기를 바랄 것이다.

드라마는 ‘과학적’으로 얼마나 정확할까. 우선, 악성 뇌종양에 CAR-T 치료를 한다는 시도부터 과하다. CAR-T세포는 인체 면역체계의 하나인 백혈구 T세포를 추출해 암세포 인식 능력을 추가한 뒤 다시 환자 몸에 집어넣음으로써 항암 효과를 극대화한다. 다만 지금까지 고형암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병명도 문제다. 주치의는 일반 종양과 형태부터 다르고, 안개처럼 퍼져 있고, 치료의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며 ‘클라우드 세포종’이라고 말한다. 임상에는 없는 병명이다. ‘교모세포종’일 가능성이 크다. 교모세포종은 뇌 조직 전반에 걸쳐있는 신경교세포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뇌압을 상승시켜 두통·구토·경련 등을 일으키고, 치료 후 평균 생존 기간이 12~18개월에 불과하며 재발률도 높다. 암 중에서도 가장 악성으로, 표적항암제도 개발되지 않았다. 종영을 몇 회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작가가 주인공을 어떤 식으로 살려낼지 궁금해진다. 해피엔딩을 위해서라면 약간의 오류는 눈감기로 했다.

연구·개발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연구계는 ‘멘붕’에 빠졌다. 과학은 인류의 문명이고 인문학의 바탕 위에서 성장했다. 올해 출판콘텐츠 제작지원과 중소출판사 창작지원, 지역 서점 문화 활동 등에 대한 정부 예산도 전액 삭감돼 출판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번역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 역시 예산이 삭감됐다. 콘텐츠 산업은 일반인들의 접근성을 높여,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첨병 역할을 한다. ‘삼체’는 우리의 문명을 거꾸로 돌리는 것은 외부의 힘보다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경고한다. 우리는 지금 시공(時空)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빨간불이 깜빡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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