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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수의 그림산책] 처음 보는 ‘무릉도원’

  • 황정수 미술평론가
  •  |   입력 : 2024-04-14 18:49:0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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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기이한 그림이다. 커다란 무지개 모양의 돌문을 지나면 좌우로 뾰족한 작은 봉우리들이 호위병처럼 서있고, 그 가운데 큰 봉우리 우뚝 솟아 있다. 그 봉우리에 다다라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손님을 맞듯 누각이 나온다. 이어진 길을 따라 더 올라가면 기와집 여러 채가 마을처럼 있고, 한참을 더 오르면 더 큰 마을이 마치 궁궐처럼 펼쳐져 있다. 봄이 한창인지 각 마을은 복사꽃으로 둘러 싸여 온통 분홍빛이다. 마을에 사람이 안보여 좌우를 둘러보니, 기이한 봉우리들이 병사들 줄지어 서 있는 듯 우뚝 서있다. 이곳저곳 다른 바위들도 모두 기이하게 생겼다. 이런 신기한 풍경은 도대체 어딜까?

작자 미상의 무릉도원.
섬 같은 봉우리들이 외따로 구름 속에 서있는 것처럼 보이니 속세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있고, 마을 주변에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을 보면 도연명의 ‘도화원기’의 무대인 ‘무릉도원’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보통 조선시대 화가들이 무릉도원을 그리면, 뱃길을 따라 동굴 같은 곳으로 들어가 복사꽃 가득한 마을을 만나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무릉도원을 마치 옥황상제가 사는 하늘의 궁전을 묘사하듯 그렸다. 평평한 넓은 곳에는 기와집들이 궁궐처럼 호화롭게 자리하고 있고, 주변에는 복사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이색적인 모습은 모든 바위들을 사람의 모습처럼 의인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길가의 봉우리와 바위를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그렸다. 우뚝 솟은 봉우리는 지체 높은 관리의 모습처럼 그리고, 바위 사이사이에도 마치 숨은 그림처럼 웅크린 사람의 모습을 숨겨 놓았다. 이런 특징은 조선조 후기 민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모습이다. 화조 민화에도 나타나지만, 특히 민간의 이름 모를 화가들이 그린 금강산을 소재로 한 그림에 자주 나온다.

경제적 여유가 부족해 직접 금강산에 오르지 못했던 민간의 화가들은 주로 화보를 참고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림을 그렸다. 금강산의 산세를 왜곡해서 그리기도 하고, 봉우리를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처럼 그리기도 했다. 이는 신비한 금강산의 산봉우리에 산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래 전 고대사회부터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되어온 신앙적 태도가 반영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신체적으로 나약한 인간은 주변의 무생물에게도 생명을 불어넣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았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생각이 무릉도원을 그린 그림에도 적용되었다. 비록 신화 같은 글 속에 등장하는 세계이지만, 때로는 가깝게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신비로운 세계였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무릉도원에 대한 생각의 일면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그림이다. 그들은 무릉도원이란 세계를 이 세상과 다른 이상향으로 생각했다. 이 세상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음 세상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는 별세계로 생각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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