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겨우 공사를 시작한 부산롯데타워가 또다시 설계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롯데타워는 지난해 8월 기공식 당시 67층 높이에 저층부는 복합쇼핑몰, 고층부에는 루프톱 전망대를 설치하고 중층부는 비워 타워 형태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중층부에 상업 및 업무시설 등을 추가하기로 계획을 바꿨다는 것이다. 설계 변경안은 오는 6월께 부산시에 제출할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지금쯤 10층 이상 구조물이 올라가야 정상이지만, 지하 진출입로 확장 외에는 사실상 공사 진척이 없다. 2026년 완공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산시는 지연 사유를 확인한 후 그 결과를 오는 9월로 예정된 롯데백화점 광복점 임시사용 재승인 심사에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8월 11일 부산 중구 중앙동 부산롯데타워 건설현장에서 열린 기공식. 국제신문 DB

부산 시민이 롯데타워의 설계 변경에 이토록 민감한 건 롯데 측이 부산에 랜드마크 건물을 지을 의지가 과연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 한 두번 아니어서다. 롯데는 당초 107층 건물을 짓는다 했지만 이후 터파기만 하고 20년 가까이 방치했다. 비난 여론이 일자 56층으로 대폭 낮춘 수정안을 제시했고 이후에도 진전은 없었다. 부산시가 백화점 임시사용 승인권을 무기로 강하게 압박하자, 그제서야 현재의 67층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기공식 당일 사전 협의나 설명도 없이 대폭 수정된 외관 디자인을 불쑥 내놓아 다시 한번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번 중층부 설계 변경이 기공 전에 이미 계획되어 있었는지, 이후 급변한 상황을 반영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롯데타워 공사가 주도면밀한 검토 없이 임기응변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만 키울 뿐이다.

부산시청이 있던 롯데타워 부지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이 자리에 어떤 건물이 들어서느냐는 원도심을 대표하는 광복동 남포동 일대 상권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하다. 롯데 측은 롯데타워 공사 지연 문제로 지난해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부산시가 장기간 공사 지연에 강력 대응하며 롯데백화점 광복점 임시사용을 불허하는 바람에 실제로 평일 하루 백화점이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백화점 직원은 물론이고 주변 상인들조차 전전긍긍했다. 더 이상의 희망고문은 안 된다. 만약 롯데 측에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면 설계 변경이 아니라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는 게 그나마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대기업 총수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부산시청을 찾아 “시민이 우려하지 않게 차질 없이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시장 연임 성공 일성으로 내놓은 발언이 “롯데타워 조속 건립”이었다. 그룹 총수까지 나서 약속했으면 반드시 이행해야 하고, 이것이 불발되면 허가권자인 부산시는 보다 단호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 부산 시민이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