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언론학자 노엘레 노이만은 1974년 ‘침묵의 나선형 이론’을 주장했다. 자신의 견해가 우세 여론과 일치하면 적극 표출하고,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는 현상이다. 자신이 소수 의견으로 드러나면 자칫 불이익이나 나쁜 평가를 받거나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침묵 이유로 고립의 두려움이나 동조성 등을 꼽았다.
이 이론에 따라 여론조사에서 속내를 숨겼다가 투표장에서 진심을 드러내는 유권자를 ‘샤이(Shy) 표심’이라고 칭한다. 1992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 존 메이저 총리는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노동당 후보에 1%p 뒤졌다. 하지만 실제 선거에선 7.6%p의 큰 차이로 승리했다. 정치권은 보수당 지지자들이 여론조사에 소극적으로 응하는 바람에 이 같은 결과가 빚어졌다고 분석했다. 수줍다는 뜻의 영어 ‘샤이’에 보수당의 전신인 토리당 이름을 따 ‘샤이 토리’란 용어가 나왔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여론조사 기관들의 예상을 깨고 승리하면서 ‘샤이 트럼프’가 부각됐다. 여론조사 내내 지지를 표하지 않다가 투표장에선 트럼프를 찍은 것이다. 선거 기간 트럼프는 반이민·여성비하·인종차별 발언을 일삼으며 물의를 일으켰다. 공화당 지지자 상당수가 이런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드러내놓기 부끄러웠던 셈이다.
4·10 총선 사전투표를 이틀 앞둔 지난 3일 지역구 254개 의석 가운데 국민의힘은 ‘90∼100석’ 더불어민주당은 ‘110석+α’를 확보할 것으로 자체 전망했다. 이는 정당 투표를 통한 비례대표 의석(46개)은 제외한 수치다. 박빙으로 이기거나 지고 있는 경합지역을 국민의힘은 55곳, 민주당은 50곳 이상으로 집계했다. 초박빙 선거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샤이 표심’이다. 국민의힘은 여권에 불리한 각종 현안 때문에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샤이 보수층’이 5~10%에 달한다고 본다. 이들이 투표에 나선다면 경합열세 지역 상당수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 사전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부산 주요 선거구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대혼전이다. 북구을 강서 사상 등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 세력이 강한 해운대 수영 남구는 보수 후보 간 경쟁, 선거구 합구, 의정갈등 변수로 격전지로 변했다. 연제구도 여당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A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하면서 당선은 다른 당 B 후보가 될 것이라고 응답하는 사례가 많다. 속내를 숨기다 투표장으로 나올 부산 유권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