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과 점심식사 후 카페에 들렀을 때였다. 직원에게 차례로 마시고픈 음료를 주문하는데 카페의 레시피와 다르게 달기 정도를 추가로 전하는 중이었다. 한명은 “덜 달게” 한 명은 시럽을 “반 펌프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반 펌프’의 의미는 명확하다. 물론 시럽통의 펌프를 힘껏 꾹 누르지 않고 적당히 절반을 눌러야 하니 저울로 잰 것처럼 딱 떨어지진 않겠지만 미각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변수이리라. 그런데 ‘덜 달게’ 란 꽤 은유적인 표현이다. 순간의 호기심이 생긴 나는 직원이 “덜 달게”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모호한 요청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을 할 건지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기다렸다. “원래 시럽 양의 절반만 넣을까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주문을 받자마자 직원은 아무 대꾸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앉을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친구들을 나는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진동벨이 울리고 음료가 나오자 각자 주문한 음료를 홀짝이기 시작했는데 ‘덜 달게’를 주문한 친구는 만족스럽게 음미하는 것이었다. 카페 직원은 ‘덜 달게‘ 란 표현에 원래의 시럽보다 얼마나 적게 넣었을까? 관상이라도 보는 능력이 있어서 손님에 따라 다른 전략을 가져가는 것일까, 아니면 무조건 절반만 넣는 것일까?

그날의 ‘덜 달게‘ 레시피는 주인과 손님 모두 만족하는 경우였지만 일상에서는 좌절할 일이 많다. ‘적당히‘ ‘안 짜게’ ‘자연스럽게’라는 표현 모두 말하는 사람의 상당한 기대가 담겨 있다. 이를테면 ’덜 달게‘ 라는 말은 ‘달콤한 음료를 마시고 싶어 하지만, 아무래도 건강에 안 좋으니까 조금만 줄여줘. 그래도 맛은 있어야 해’ 라는 기대가 담겨 있을 것이다. ‘싱겁게’가 아니라 ‘안 짜게’라는 말은 짭조름하고 감칠맛을 기대하지만 염분이 많아서 몸에 해롭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소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기대를 충족하도록 듣는 사람이 맞추어 나가는 화법을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고맥락적 화법’이라는 표현을 썼다. 옛말에도 오랜 고맥락적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입안의 혀 같다’는 여구지설(如口之舌)이란 말도 있지 않는가. 타인이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지레짐작해서 파악하는 능력을 우리는 ‘눈치가 빠르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고맥락적 화법이 통하는 경우는 기울이진 관계인 경우가 많다.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그만큼 아는 정보와 경험이 많아야 한다. 말하는 사람이 구구절절 표현하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에서는 이런 화법이 되레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 갈등이 생긴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내 마음을 이 정도는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영원한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마음을 상대에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 상대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사라지는 듯하다. ‘영원한 내 편’이라는 마법으로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내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는 것이다.

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귀가한 사람은 배우자가 따뜻하게 자신을 맞아주며 일터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주기를 바란다. 반대로 아기를 돌보며 하루종일 가사 일에 허덕인 사람으로서는 배우자가 어서 퇴근해서 자신과 소통하며 아이돌봄을 나누어 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양쪽 모두 자신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같다. 문제는 자신의 기대가 꺾이게 되면 상대방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나 배우자가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끼면 억울함이 북받친다.

그럴 때는 한 박자 쉬어가야 한다. 내가 표현한 ‘안 달게’가 설탕 한 스푼이었다면 상대는 두 스푼으로 이해한 것일 수 있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제 마음을 정말 잘 이해해줬거든요’ 라고 말하는 부부들을 보면 당시는 각자가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썼던 시기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미각도 변한다. ‘안 달게’가 이전에는 설탕 한 스푼이었다가 지금은 내 입맛이 반 스푼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모른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꼭 기억토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