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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탁월하거나 변화하거나

허남영 국립부산과학관 전시교육본부장

  • 허남영 국립부산과학관 전시교육본부장
  •  |   입력 : 2024-03-25 19:50:4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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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도 올라간 우리말 ‘먹방’. 많은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자는 음식의 맛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관심 있게 본다. 과학관은 전시물의 과학원리와 현상을 설명패널에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과학해설사들이 말과 시연을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기억에 남도록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들은 표현 중 하나는 ‘씹을수록 다양한 맛이 난다’는 것인데 선뜻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씹을수록 고소하다는 표현은 침 속의 아밀라아제가 녹말을 당으로 분해하면서 단맛이 난다고 학창 시절에 들은 것 같은데, 여러 맛이 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생물학을 전공한 친구에게 물었다가 ‘예능을 다큐로 접근하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책이나 영화는 다시 보면 장면들이 처음과 다른 인상적으로 보이는 경우를 많이 경험한다. 최근 이런 경험을 한 영화, ‘히든 피겨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2017년 봄 한국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린 후, 놀란 미국이 절치부심하여 1962년 유인 인공위성인 프렌드십7호를 성공적으로 쏜 시점까지, NASA의 우주선 개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 명의 흑인 여성이 등장하는데, 탁월한 수학적 재능을 가진 캐서린 고블, 우주선 엔지니어 재능을 가진 메리 잭슨, 나사의 유색인종 계산팀의 리더인 도로시 본이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세 인물이 당시 여성과 흑인에 대한 차별을 어떻게 극복하고 성장해 가는지가 중요 관람 포인트였다. 한편으로는 배우 케빈 코스트너(해리슨 역)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NASA 우주임무그룹(STG)의 총괄책임자 역할을 맡아, 인종과 성별에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으로만 사람을 기용함으로써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는 한편,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보안이 중요해 백인들로만 구성된 STG 건물에는 흑인 화장실이 없었고, 캐서린이 800m 떨어진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자리를 오래 비우자, 인종을 나누는 화장실 푯말을 부수고 모두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한 조치는 이런 면을 잘 드러낸 장면이었다. 인류 최초 우주인의 영예는 1961년 소련의 유리 가가린에게 넘겨줬지만, 노력 끝에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62년 2월 글렌 소령을 태운 프렌드십 7호가 궤도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최근 영화를 다시 봤을 땐 다른 장면들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먼저 수학 천재 캐서린이 IBM이 개발한 계산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잃는 장면이다. STG의 책임자 해리슨은 ‘기술발달은 양날의 검’이라며 캐서린에게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알린다. 과거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하이패스 차로가 하나씩 생길 때마다, 3명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이 생각났다. 불과 한 달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 조리사 로봇이 24시간 신속하게 음식을 제공한다는 기사가 났다. 그러면 모든 일자리는 기계로 대체되는가? 그렇지 않다. 영화에서 완벽하지 못한 IBM 컴퓨터는 인공위성 궤도 계산에 오류를 일으켰고 독보적인 실력을 가진 캐서린은 복귀할 수 있었다. 전자시계가 나오고 시계공은 없어질 것이라 예측했지만, 시계 장인들은 더 비싼 값에 시계를 판다. 로봇 요리사가 보급될수록 인간 요리사의 ‘오마카세’ 요리는 비싸진다.

그럼 독보적으로 로봇을 능가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영화 속 계산팀 리더인 도로시 본은 IBM이 도입되면 곧 계산팀이 없어질 것을 알고 IBM의 작동방식과 포트란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고 팀원들에게 가르친다. 해고 위기였던 전산팀원들은 NASA의 IBM 전담직원이 되고 본은 흑인 최초의 주임이 된다.

열흘 전쯤 챗GPT를 탑재한 로봇이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스스로 판단하여 일하는 모습이 뉴스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미국의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커즈와일은 2045년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 출현을 예측했다. 그러잖아도 인구수가 부족한 우리 자녀들의 미래 교육을 더 심각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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