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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의 시사탐방] 신문은 살아 있고, 칼럼은 말을 건다

김용석 철학자

  • 김용석 철학자
  •  |   입력 : 2024-01-04 18:49:51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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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일이다. 출판인 워크숍에 초청 강연을 갔다. 워크숍 후 친구가 한 신문의 기사를 메일로 전송해줬다. 친구는 농담이라며 “반성하며 살아야지!”라는 말도 보탰다. 내 강연 내용을 비판하는 기사였기 때문이다. 내용인즉슨, 책을 탄생시키는 출판인들 앞에서 ‘책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기사는 내가 예의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기사를 읽고 나서 ‘워크숍 취재 기자는 책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책에 대한 사랑은 책의 죽음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을 터. 그 주제의 이중적 측면을 다룬 강연에서 부정적 내용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으리라.

예를 들어 이런 내용들 말이다. 책은 이미 구시대의 산물이 되었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적 성취는 그 막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한때 알파벳이 상형문자에 대항했듯이 오늘날 디지털 코드는 자모음 코드에 대항해 곧 항복을 받아낼 태세다. 디지털적 사고와 전략은 훨씬 더 빨리 승리를 이끌어낼지 모른다. 오늘날 책의 죽음을 예견하지 않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 되었다. 책은 죽어 가고 있다.

한편 ‘책이 죽어 가고 있다’는 현상의 다른 측면, 곧 ‘책은 살아 있다. 책은 죽어 가고 있을 뿐이기에’라고 한 강연 후반부는 기자의 가슴에 와 닿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강연 전반부에 실망해서 자리를 떴던 것은 아닐까. 후반부는 최근 급변하는 문화 환경에서 잊기 쉬운 3000년 책의 역사를 조명하고 죽어 가는, 곧 살아 있는 책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책은 환경이 바뀌고 영양이 부족해서 얻은 병 때문에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을 뿐이다. 지금 책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마음과 손길이다. 지금부터 대략 50년에서 100년으로 추정되는 시기는 다시 보지 못할 책이 남기고 갈 보석 같은 말을 들을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책의 혜택을 받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죽은 자에게는 사랑을 줄 수 없다. 그리고 말기 암환자가 들어 둘 만한 소리는 많이 하는 법이다. 은유적 표현을 많이 쓴 후반부 강연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신문 지면에서 지금 책에 관한 과거의 일화를 상기하는 건, 신문의 운명도 책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17세기에 등장한 근대 신문의 역사는 400년 쯤 되는데, 최근 몇 십 년간의 변화는 그 근간을 흔들 만큼 대단했다. 신문도 ‘죽어 가고’ 있다. 곧 살아 있다. 이런 시절에 우리가 신문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도 책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와 같다.

특히 신문은 보도 기사처럼 소식을 전하는 역할도 하지만, 책의 글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글 또한 전하고 있다. 칼럼이 바로 그것이다. 뉴스의 대중전달이라는 ‘넓이의 역할’에 칼럼은 독자의 사유를 자극하는 ‘깊이의 역할’을 더한다. 칼럼은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나아가 칼럼은 다양성의 보고(寶庫)다. 생물다양성처럼 문화다양성도 문화적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데, 신문은 칼럼 필자의 다양성을 통해 자기 스스로의 다양성 또한 성숙시켜왔다.

디지털 문화와 연관된 일이 오늘날 시사(時事)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의 행동 양식도 지배하고 있다. 일상생활을 위해 활용하는 모든 전자적 기능을 통합하고 획일화한 스마트폰은 이미 ‘손 안의 빅브라더’가 되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정보와 지식 생산을 독점하려 하며, 동영상 콘텐츠는 각종 디지털 기기의 화면에서 난무한다. 사람들은 넘쳐나는 디지털 콘텐츠를 ‘보면서’ 소비한다. 읽지 않는다. 보는 것은 절로 되지만, 읽는 것은 애써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읽다’는 말에는 단순한 글 읽기를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민심을 읽고 하늘의 뜻을 읽는다’고 하지 본다고 하지 않는다. 읽기는 사유를 동반하고 이치를 탐구하며 깨달음을 얻는 행위다. 책과 신문 칼럼은 읽기 위해 있다. 모든 것을 ‘보는’ 세상에서 읽는 행위는 문화환경에 균형의 추를 달아주기 때문에 소중하다.

혹자는 오늘날 그 추의 무게가 미미해서 균형 맞추기에 효과가 없다고 하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력이나마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을 모아가는 것이다. 이 지면에도 오랫동안 책 한 권 쓰는 자세로 칼럼 한 편씩 써왔다. 20여 년 전 ‘아침숲길’의 필자로 시작해서, 최근 7~8 년 동안에는 ‘와이드 칼럼’의 필자로 글을 써왔다. 이제 물러서서 칼럼의 미덕인 필진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보탬이 되려 한다.

사족 하나, 칼럼(column)은 원래 두리기둥을 뜻하는 말인데 신문 지면에서 종(縱)으로 된 난(欄)의 모습이 그와 유사해서 파생된 말이다. 칼럼은 상징적이다. 폐허가 된 석조 건물에서 벽과 지붕은 사라졌어도 원주는 우뚝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수직으로 서서 죽은’ 듯하다. 고대 유적지에 수직으로 서서 죽은 칼럼들은 숭엄하기까지 하다.

세월이 흘러 미래 세대는 문자문화의 유적지에 수직으로 서서 죽은, 그래서 의미가 소생한 칼럼들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도 칼럼니스트들은 미래 유적을 남기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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