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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웃음은 의외로 강력하다

박지욱 신경과전문의·메디컬티스트

  • 박지욱 신경과전문의·메디컬티스트
  •  |   입력 : 2023-11-29 19:44:5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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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8공군 페데리코 곤잘레스 중위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5년 1월 25일 B-17 폭격기를 몰고 독일 공습에 출격했다가 적진 상공에서 대공포탄에 맞아 격추됐다. 정신을 차려보니 중위는 비행기 잔해 속에서 기적같이 살아남았다. 기쁨도 잠시, 부상을 당한 그에게 권총을 겨누며 다가오는 독일 농부를 보았다. 농부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알은 발사되지 않았다. 아무리 용을 써도 총이 꿈쩍도 하지 않자 농부는 투덜거렸고 중위는 이것이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8000m 상공에서 추락한 비행기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적군도 아닌 시골 농무의 손에 죽다니! 중위는 그 순간 웃기 시작했다.

농부는 어리둥절했고, 잠시 후 폭격기 잔해를 수색하러 온 독일군이 나타났다. 권총을 발사하려는 농부를 본 장교는 포로를 쏘면 안 된다고 말렸고, 두 사람 사이에 거친 언쟁이 오갔다. 농부는 밭을 망가트린 적군을 죽여야 하겠다고, 장교는 이 상황에서 저렇게 웃고 있는 미친 X을 죽여서 뭐하느냐고, 부상도 심하니 가만 두면 곧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 하는데 시골 농가에서 할머니가 나왔다. 그리고는 병사들에게 조종사를 돌보아주라고 명령했다. 노파는 전장에 끌려 나간 아들이 생각났을까? 하여간 젊은 병사들은 나이 많은 여인의 명령에 고분고분했다.

중위는 정신을 잠시 잃었다 깨어보니 눈밭의 시신들 사이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피를 토한다. 중위는 내장 파열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고, 어렵게 살아날 수 있었는데 여기서 이 차가운 눈 위에서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때 아직 소년 티가 나는 독일군 병사가 다가와서는 중위의 비뚤어진 코를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중위는 몰랐지만 코피가 났었고 그 피를 자신도 모르게 삼켰다가 한꺼번에 다 토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노파의 집이었다. 중위는 벽난로 앞에 누워있었다. 노파는 중위에게 차와 담배를 주었다. 두 손, 두 다리, 늑골의 골절로 중위는 몸을 쓰기 어려웠지만 노파는 찻잔을 들어주고, 담배 피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 이 정도 대우면 괜찮겠네. 독일군의 포로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아’라고 생각한 순간 집 앞에 트럭이 멈췄다. 중위는 트럭 뒷칸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실려갔다. 그 충격으로 몸 여기저기에 잠든 통증이 깨어났고 너무 아파서 다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포로 수용소였다. 운이 좋게 의사를 만났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체포된 프랑스 의사였다. 의사의 도움으로 부러진 뼈도 아물었고 음식도 잘 먹어 목숨을 부지했다. 봄이 왔고 미군이 수용소에 진주했다. 경비병들은 저항하지 않고 항복했고 미군은 포로들을 구출했다. 물론 곤잘레스 중위도 해방됐다.

독자 여러분이 보시기에 중위가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1. 튼튼한 B-17 2. 빨리 발견해준 농부 3. 포로의 인권을 존중한 독일군 장교 4. 노파 5. 포로수용소 의사 6. 미군의 빠른 공세 7. 웃음.

모두 다 도움이 됐다. 드물게 일어나는 행운들이 궤를 맞추어 중위의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그 행운을 불러온 첫 계기는 웃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1900년에 철학자 베르그송은 웃음은 사람들에게 유대감을 안겨준다고 했다. 2013년에 독일의 연구진은 함께 웃을 때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뇌의 부위들이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중위가 웃자 상대편도 일단 웃지 않았을까? 함께 웃으면 친밀감이 생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느낌이 생기는지도 모른다. 또한 웃음은 학습과 기억에도 도움이 된다. 수업이나 강의에 웃음이나 유머가 섞이면 기억도 잘되고 학습 능률도 오르지 않던가. 웃음은 가벼운 운동 효과도 생겨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을 크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니 웃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현실이 너무 척박해 웃을 일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일상은 불가피한 스트레스의 늪에 반쯤 잠긴 상황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능하면 재빨리 부정적인 감정, 불쾌감의 늪에서 헤엄쳐 나와야 한다. 그 첫 발길질이 바로 웃는 것이다. 곤잘레스 중위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이렇게 웃어보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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