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저무는 11월에 - 턴 투워드 부산

  • 이해인 수녀·시인
  •  |   입력 : 2023-11-16 19:42:54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

저무는 십일월에 한 장 낙엽이 바람에 업혀 가듯

그렇게 조용히 떠나가게 하소서

(…)

죽은 이를 땅에 묻고 와서도 노래할 수 있는 계절

차가운 두 손으로 촛불을 켜게 하소서

-‘순례자의 기도’에서

지난 11일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추모명비 앞에 선 이해인 시인.
어느 때보다도 가까이 죽음을 묵상하는 달인 십일월이 되니 성당 앞의 느티나무 잎사귀도 다 떨어지고 며칠 전 내린 비로 인해 나뭇잎들이 이별의 흐느낌처럼 바닥에 깔려있습니다.

성당 앞 게시판엔 일생을 한국에서 보낸 어느 독일인 수사님의 부고가 붙어있는데 환히 웃고 있는 그분의 사진을 보니 마음이 짠합니다.

얼마 전엔 동기 수녀님 한 분이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다가 암세포가 전신에 퍼져 더 이상의 치료도 못 받고 퇴원해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안타깝던지요.

이래저래 아픔과 죽음의 소식을 많이 접하니 우울해지기도 하는 요즘, 세상 떠난 친지들의 모습이 부쩍 더 그리워지곤 합니다.

며칠 전 제 어머니의 꽃골무를 어느 공동 방에서 발견하곤 그리움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2.

수녀원 묘지에 올라가 더 자주 연도를 바쳐야지 다짐해 보는 11월.

어제(11월 11일)는 아주 오랜만에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가서 유엔참전용사 국제 추모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의 추모명비에도 일부가 새겨진 저의 추모 시를 직접 낭송하는 영광을 누렸지요. 은은한 첼로 연주에 맞추어 낭송을 하는데 분위기 때문인지 몇 줄 안 되는 시의 무게가 대단히 크게 느껴지고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과 그 가족들의 모습이 함께 생각나며 그들의 숨은 희생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간절한 기도의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어떻게 님들을 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님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꽃다운 나이에 전쟁터에서

함께 싸우다 함께 스러진 슬픈 님들이여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 조그만 나라 위해

목숨까지 바친 고마운 님들이여

지금은 이 낯선 땅 돌 위에 새겨진 님들의 이름을

바람과 파도가 불러줍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정다운 별로 살아오는 님들

지지 않는 그리움이여

우리의 조국에 님들의 이름을 사랑으로 새깁니다

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 전문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시낭송에 대한 인사를 하며 사진찍기를 요청하던지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쁜 마음이었지요.

사랑은 희생의 열매임을 눈으로 다시 확인한 뜻깊은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이기심의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이타적인 사랑의 힘을, 죽음을 뛰어넘는 인류애를 묵상해 보는 날이었습니다.

6·25 한국전쟁 당시 저는 부산으로 피란 온 만 5살 어린소녀였는데 그 많은 피란민들에 기꺼이 방을 내어준 부산 사람들의 가족적인 환대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 부산 광안리에 있는 수녀원에서 반세기 이상을 살아오면서 제 마음은 늘상 부산을 향해 있고, 사랑과 감사를 잊지 않고 새롭게 키워가는 부산 사람, 부산 예찬론자입니다.

일상의 길 위에서 어떤 사소한 일로 마음이 닫히고 꽁해져서는 안 되겠다.

매사에 좀 더 넒고 큰 마음의 사랑을 키워가는 형제애, 인류애를 키워가야겠다는 결심을 더 새롭게 한 ‘턴 투워드 부산 (Turn toward Busan) 11월 11일, 저의 여생 또한 턴 투워드 부산이 되길 겸손 되이 발원해 본 고마운 날이었습니다.



3.

한 주검을 깊이 애도하기도 전에

또 다른 주검이 보도되는 비극에도

적당히 무디어진 마음들이 부끄럽습니다

하늘에서 땅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우리 기족과 이웃들을 굽어보소서

…자신의 아픔과 슬픔은

하찮은 것에도 그리 민감하면서

다른 사람의 엄청난 아픔과 슬픔엔

안일한 방관자였음을 용서하소서

…나 아닌 그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해주길 바라고 미루는

사랑과 평화의 밭을 일구는 일

비록 힘들더라도 나의 몫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의 집을

내가 먼저 짓기 시작하여

더 많은 이웃을 불러 모으게 하소서

-시 ‘우리를 흔들어 깨우소서’에서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 18석 유지…북 갑을 분리, 강서 독립, 남 합구
  2. 2조경 불량 에코델타…주거밀집 2단계 더 우려
  3. 3與 박성훈 투입 거론, 野 정명희·노기섭 채비…부산 북을 누가 나설까
  4. 4박수영은 용호동, 박재호는 우암동…상대 지역구 넘나들며 표밭 다지기
  5. 5사하 괴정골목시장 “3만 원 이상 당일 무료배송 합니다”
  6. 6‘현역’ 김희곤 對 ‘권영문 지지’ 서지영…동래 보수표심 향방은
  7. 7부산의 미식 육성 ‘맛벤저스’가 뜬다
  8. 8부산대 의대 교수들 “2000명 증원 원점 재검토를”
  9. 9롯데월드의 봄…낮엔 튤립, 밤엔 불꽃 화사하게 피어난다
  10. 10우크라 최전선 바닥난 포탄…서방, 한국에 공급 압박
  1. 1부산 18석 유지…북 갑을 분리, 강서 독립, 남 합구
  2. 2與 박성훈 투입 거론, 野 정명희·노기섭 채비…부산 북을 누가 나설까
  3. 3박수영은 용호동, 박재호는 우암동…상대 지역구 넘나들며 표밭 다지기
  4. 4‘현역’ 김희곤 對 ‘권영문 지지’ 서지영…동래 보수표심 향방은
  5. 5‘쌍특검법’ 부결…법안 결국 폐기
  6. 6[부산 경선지역을 가다] 해운대을 탈환 놓고 野 3파전…‘친명’마케팅 이곳서도 통할까
  7. 7與, 창원진해 이종욱 전략공천…타후보 “경선 없으면 고발할 것”
  8. 8[원포인트 공약] 더불어민주당 부산진갑 서은숙 후보, "부전역 복합환승센터 신설"
  9. 9국힘 PK경선 ‘현역 불패’ 깨졌다
  10. 10[속보] 부산 북구 갑을로 분구, '전재수 텃밭' 만덕1동은 북구을로
  1. 1사하 괴정골목시장 “3만 원 이상 당일 무료배송 합니다”
  2. 2롯데월드의 봄…낮엔 튤립, 밤엔 불꽃 화사하게 피어난다
  3. 31급 발암물질 배출 수입船 운항 못한다(종합)
  4. 4에어부산 “에부리·러부리 39종 뜹니다”
  5. 5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 7년 연속 최우수 콘텐츠
  6. 6비트코인 사상 최고가…8800만 원 돌파
  7. 7해양박물관 ‘우수기관’ 선정
  8. 8피크닉·브런치 즐기며 ‘봄캉스’…부산 호텔가 시즌 패키지 속속
  9. 9대륙붕 7광구 등 영토 이슈 증가…해양권익 강화해야
  10. 10신세계사이먼 부산서 초대형 ‘하리보 젤리’ 콘텐츠
  1. 1조경 불량 에코델타…주거밀집 2단계 더 우려
  2. 2부산대 의대 교수들 “2000명 증원 원점 재검토를”
  3. 3‘고분양가 고수’ 울산 아파트 자충수 두나
  4. 4부산 만세운동 주도했는데…예우 못 받는 파란눈의 독립운동가들
  5. 5전공의 복귀 미미…약발 안먹힌 형사처벌…정부, 국립 의대 교수 2배 증원 유인책도
  6. 6“20기, 국제아카데미史 모범 될 것…자부심 가지길”
  7. 7오늘의 날씨- 2024년 3월 1일
  8. 8부산글로벌도시재단 대표, 전용우 전 JTBC 선임기자
  9. 9차에서 튕겨 나간 40대, 차량 3대에 치여 숨져
  10. 10부산 울산 경남 대체로 맑고 ‘쌀쌀’…강풍 주의
  1. 1루키 전미르 싸움닭 기질…“구위 1군 무대서 통한다”
  2. 2K리그2 부산 아이파크 윙어 권성윤 영입
  3. 3셀틱 양현준 2경기 연속 골배달…부상 황희찬 교체
  4. 4내리초 김채현 감독 우수지도자패
  5. 5고우석 샌디에이고 서울개막전서 불펜투수 유력
  6. 6“롯데 나균안 불륜” 아내 폭로…본인 해명에도 등 돌린 팬심
  7. 7손흥민·이강인 황선홍호 승선할까
  8. 8부산시체육회 회원종목단체 직무연수
  9. 9이정후 빅리그 시범경기 첫 타석서 안타치고 첫 득점까지
  10. 10고진영 “올해 부상없이 행복하게 골프성과 내겠다”
우리은행
2030 엑스포 백서…글로벌 허브로의 항해 계속
간사이 광역연합 상생의 엑스포…부울경도 함께 재도전을
2030 엑스포 백서…글로벌 허브로의 항해 계속
영도 트램, 서구 의료특구…원도심 ‘新성장동력 발굴’ 특명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부산 영도, 낭트의 낭트 섬을 보자
세계유산에 대한 오해 풀기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과학기술 홀대의 슬픈 자화상
디지털 대전환을 맞이하는 교육자의 자세
국제칼럼 [전체보기]
생성형 AI시대와 저작권
‘지식 콘텐츠 챌린지’에 도전하기
기고 [전체보기]
갈등과 반목의 시대, 문화 간 소통 확대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더 늦춰서는 안 돼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의전당 대표 연임…소통 외치는 현장에 귀 기울여야
김해외국인노동자센터 예산삭감 재고를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이재명 대표께
꼰대세상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노무현이 옳았다
분노를 잃으면 ‘생성형 인공지능’도 답이 없다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신문은 살아 있고, 칼럼은 말을 건다
연례행사 노벨상에 유감 있다면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원초적인 기층음악 민속악과 재즈
전통음악 교육 활성화를 기대하며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따뜻한 말의 힘, 사람의 마음이 된다
데스크시각 [전체보기]
가덕신공항과 박형준의 정치적 미래
도청도설 [전체보기]
진격의 라면
축구 원팀과 임시감독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할머니의 곶감
아메카지와 부대찌개
사설 [전체보기]
명맥 유지 바쁜 블록체인특구, 부산시 뭐하나
지역구 지키려 대표성 훼손…우리 정치의 민낯
세상읽기 [전체보기]
인생 2회차
이선균의 죽음이 던지는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우리 시대의 올바른 복지 원칙
복지국가 정치가 절실한 이유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부산항, 글로벌 물류 허브 플러스 알파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12월의 기도편지
저무는 11월에 - 턴 투워드 부산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중국의 한국시장 시장교란
인구문제에 대처하는 근원적 방법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지리산 문화권의 새로운 구상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오! 홍범도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자신과의 경쟁’이 ‘경쟁 교육’ 대안이다
펫팸족과 신성장동력 펫코노미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자객공천’ 유감
진짜 ‘영남 스타’가 되려면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역사 속 와인 마케팅
처음이란 무엇인가? 조지아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부산의 위대한 도전은 계속 된다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왈츠와 신년음악회
캐럴과 송년음악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무호 이한복의 ‘운룡도’
남리 김두량의 ‘삽살개’
CEO 칼럼 [전체보기]
우리 이제 살 만한가 봅니다
마이스 도시 부산, 문화 콘텐츠로 완성하다
  • NPL강좌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