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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안고 죽는다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  |   입력 : 2023-10-05 19:09:0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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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한 것은 16세기 프랑스 데카르트였다. 맹신을 벗어나 ‘의심하는’ 근대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생각’이었다. 1999년 빌 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라는 책에서 온라인 비즈니스, 소셜 미디어의 등장, 인공지능의 발전, 가상현실, 3D 프린팅, 로봇 사용 확대 등을 전망했다. 그의 예측은 대부분 현실이 되었다. 아이폰이 2007년,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2004년과 2005년, 우버는 2009년에 출현했다. 2017년에는 골드만 삭스가 인공지능 투자 프로그램 ‘켄쇼’를 도입해 600명의 주식 트레이더 가운데 2명만 남기고 598명을 집으로 보냈다. 빌 게이츠가 틀린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빌 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만큼 빠르게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는데 실제는 ‘변화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69년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AGC(Appllo Gudiance Computer)라는 당시 세계 최고의 40비트 슈퍼컴퓨터였다.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스마트폰은 64비트로, 연산속도가 당시의 AGC에 비해 24억 배 이상 빠르다.

슈퍼컴퓨터는 당대 최상급 처리능력을 보유한 고성능 컴퓨터를 말한다. 지난 9월 13일 기준,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는 중국의 ‘천주지성3’이다. 1초에 1.022경 개의 연산을 처리할 수 있다. 1경은 1억의 1억 배로 1 뒤에 0이 16개가 붙는 천문학적인 숫자이다. 국제슈퍼컴퓨터학회(ISC)가 발표한 세계 상위 500대 슈퍼컴퓨터 국가별 보유 현황을 보면 중국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226대로 압도적 1위이다. 다음이 미국 113대, 일본이 70대이다. 한국은 5대를 갖고 있다. 성능 기준으로는 2021년까지 한국이 5위였으나 2022년에는 8위까지 밀렸다.(구글바드 답변)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였다가 2022년에는 13위로 내려앉은 것과 무관하지는 않아 보인다. 지난 8월 말에는 전기요금 3억 원이 없어서 한국과학기술정보원(KISTI)에 있는 슈퍼컴퓨터 ‘누리온’의 일부 서버가 가동이 중단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슈퍼컴퓨터 가동에 필요한 예산이 모자라자 연구원에서 장비 일부의 전원을 껐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슈퍼컴퓨터가 아닌 ‘대용량데이터허브센터(GSDC)’의 장비였으며 곧 정상화했다고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GSDC는 첨단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고, 공유 및 분석하는 일종의 연구 플랫폼이다. 민간기업이나 개별 연구기관은 비용 때문에 구축이 어려워,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며 연구 환경을 뒷받침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인 ‘구글바드’에 슈퍼컴퓨터와 GSDC는 어떤 관계인지 물었다. 구글바드의 답변은 서로 다른 것은 맞지만 GSDC 가동중단은 슈퍼컴퓨터의 일부 기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유사한 표현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슈퍼컴퓨터는 기상예측은 물론 국가 재난관리, 사회안전망 구축, 나아가 과학과 산업 분야의 다양한 용도에 활용된다. 가장 최근에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대박 사례는 코로나 백신으로 유명한 기업, 모더나이다. 모더나는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 백신 후보물질을 찾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효능과 인체 안정성을 검증했다. 백신 개발은 18세기 영국 제너의 천연두 백신이 최초이다. 그 이후 많은 백신이 개발됐지만, 실제 활용에는 최소 10년 이상 많게는 수십 년이 필요했다. 하지만 모더나가 백신을 내놓는 데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11개월이었다. 2020년 12억 달러의 적자를 냈던 모더나는 2022년 48억7000만 달러, 우리 돈 6조5000억 원의 순이익을 창출했다.

선진국은 해마다 엄청난 예산을 들여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몇 배씩 업그레이드한다. 하지만 한국은 제자리걸음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 곡식을 먹지 않고 끌어안고 죽는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기, 씨앗 곡식은 무엇일까? 치열한 연구개발(R&D)을 통해 알아내고 키워나가야 할 과제이다. 한국은 2018년부터 GDP 대비 R&D 예산을 꾸준히 확대해 2021년에는 4.23%로 이스라엘의 4.95%에 이어 전 세계 국가 중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회에 제출된 내년 한국의 ‘주요 R&D 예산’은 올해보다 3조4000억 원, 13.9%가 줄었다. IMF 외환위기에도 깎인 적 없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이다. ICT 한국을 만든 과학기술이, 30조 원의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나눠 먹는 ‘약탈적’ 이권 카르텔로 규정되었기 때문이다.

부자 감세와 경기침체로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으면서 올해 세수 펑크는 59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처럼 갖다 쓴 돈은 100조 원이 넘었다. 그럼에도 3조 원을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하겠다고 한다. 수출은 11개월째 계속 줄고 있고, 구직활동도 포기하고 ‘그냥 쉰다’는 청년이 40만 명을 넘었다. 합계출산율은 0.78 명으로 또 줄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현실적 고민 대신 압수수색, 가짜뉴스 척결, 공산전체주의 등 무시무시한 단어들만 떠돈다. 덩샤오핑이 “고양이는 털이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말한 지 벌써 40년이 지났다. 한국은 아직도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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