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폰이 웅웅거립니다. 아들이 보내온 메시지군요. 금줄을 걸어둔 대문 사진이 뜹니다. 새끼줄에 숯과 솔잎, 한지까지 접어 끼워 넣은 것을 보니 제대로 알고 만든 금줄 같습니다. 초인종 근처엔 ‘쉿! 아기가 자고 있어요’라고 쓴 토끼 모양의 작은 카드도 붙여놨습니다. 이것들을 마련해서 걸고 붙이며 행복했을 마음이 보입니다. 신생아실에서, 입원실에서 힘들게 견딜 가족을 생각하는 가장의 애틋한 사랑입니다. 함께할 수 없는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공유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들 내외는 결혼 9년 만에 어렵고 힘들게 부모가 되었습니다. 난임으로 오래 고생을 하였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귀하고 귀한 아기를 얻었습니다. 산모와 아기의 안전을 위해 병원과 조리원에서는 가족의 방문은 물론 면회마저 일절 금하고 있습니다. 출입금지라는 금줄을 쳐 바깥의 위험요소를 차단한 것입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밖에 만날 수 없지만 3주 정도는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설레며 얼마든 즐겁게 기다릴 수 있겠지요.

예부터 귀하고 신성한 것일수록 막강한 금줄을 쳐 그것들을 지키고자 했을 것입니다. 금줄은 ‘부정한 것의 침범이나 접근을 막기 위하여 문이나 길 어귀에 건너질러 매거나 신성한 대상물에 매는 새끼줄’입니다. 예전엔 집안에 누가 출산을 하면 대문에 금줄을 걸었습니다. 그러면 그 신성한 곳에 누구도 함부로 드나들지 못했지요. 이런 막강한 힘을 가진 ‘금줄’이 상징하는 것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예술적이며 깊은 철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줄에 쓰이는 새끼줄은 왼손으로 꼬아 사용했으며 왼쪽으로 꼰 새끼를 신성시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일반적으로 쓰이는 모든 새끼줄은 오른쪽으로 쉽게 꼬아 만든 것이군요. 그래서 특별한 때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금줄용 새끼는 왼손으로 힘들게 꼬아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얼마 전부터 오른손 손가락들이 붓고 구부리기가 힘들어 왼손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평생 왼손으로는 해보지 않았던 것들 중 글씨쓰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왼손으로 안쪽에서 바깥쪽을 향해 쓰는 것은 그냥저냥 되는데 읽기가 힘들다 하여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써보니 읽기는 쉽지만 몇 글자를 쓰는데도 기력이 부칩니다. 개발새발인 글씨를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렸더니 캘리그래피 같다느니, 자신의 오른손 필체보다 낫다느니, 예술이라느니 하는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의례적 인사인 줄 알면서도 힘이 되는군요. 왼손으로 쓴 글씨와 벗들의 격려가 아픈 오른손을 지켜주는 금줄이 된 셈입니다.

다시 아들 집 대문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도 누군가의 금줄에 의해 보호를 받았을 것이고 또 누군가의 금줄이 되어 그들을 지키기도 했을 것입니다. 처음의 신성성은 시간이 지난 만큼 조금씩 일반화되어 세상의 일부가 되었을 테지만요. 변종 바이러스처럼 위험한 요소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늘 주변을 살펴야겠지요. 언제라도 금줄이 되어 그들을 둘러싼 채 출입금지를 명해야겠지요.

아들 내외는 자식으로서의 금줄에다 부모로서의 금줄 하나를 더 걸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지켜야 할 대상들이 늘어났으니 그만큼 책임감이 더 무거워진 셈이지요. 누군가를 지켜야 할 금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만은 아닙니다. 현명한 금줄이 되기 위해선 사랑과 지혜를 끊임없이 달구어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 만물들의 금줄에 감사하며 그 아픔까지 헤아릴 줄 아는 사려 깊은 금줄이 될 것입니다.

이번 한가위는 가늠할 수 없는 기쁨으로 벅차게 보냅니다. 먹어도 탈이 나지 않고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으니 아주 특별한 구간에 심신이 들어선 까닭입니다. 한낮을 긁어대는 산비둘기 소리, 비탈을 타고 오르며 꽃 피우는 풀들, 어둠을 뚫어대는 귀뚜라미 소리, 이 모두 누군가를 지켜주려는 신성한 금줄이 아니겠는지요. 눈물이 핑 돕니다. 둥근 달이 지상의 어둠을 살피는 시각, 어디 기침소리 들립니다. 누군가 사랑의 금줄을 달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