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말을 배우고 싶었다. 처음엔 아주 작은 소리나 진동 혹은 미세한 몸짓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꽃은 늘 말하고 있지만 내가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꽃의 말은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홀로 다양한 것들을 탐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붓다가 가르침을 펼치기 위해 아무 말 없이 옆에 있던 연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염화미소’로 알려진 그 장면 말이다. 처음엔 부처님이 꽃을 들고 가르침을 펼치셨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마하가섭이 부러웠다. 대체 무엇을 알았던 걸까? 한 스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자체가 깨달음을 위한 가르침의 하나예요. 사실 정말 그런 상황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답니다. 오직 깨닫는 자만 알게 되는 화두 같은 것이죠.” 그 순간 마하가섭의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꽃의 말을 듣고 싶던 마음은 스스로 품게 된 ‘자생화두’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여인초 잎이 선녀의 부채처럼 줄지어 서 있던 발리 우붓의 좁은 길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 있었던지 내 그림자도 사라지고 새들의 지저귐조차 없다고 느꼈을 때였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날 봐. 여기야. 나 좀 봐.” 나의 왼쪽 어깨 위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본 나는 멀리서부터 물결이 일듯 팔랑이는 열대식물들을 보았다. 그것은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곳엔 바람 한 점 불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들었던 그 목소리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화두의 답을 찾듯이 거짓말 같은 진실을 따라갔다. 그날 이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침묵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했다. 그리하여 꽃은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했다.

나의 보통의 날들은 늘 생각과 감정으로 넘쳐났다. 하지만 꽃이 지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던 날엔 마음이 조용했다. 목련의 마지막 모습은 전사처럼 강렬했고 5월의 꽃 작약은 끝까지 자기 생이 다했음을 숨기려 했으며 아네모네는 꽃잎이 아래로 완전히 젖혀지면서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튤립은 꽃잎이 투명해질 때까지 춤을 췄다.

숲의 나무들은 어떤가? 가을이 되면 나무는 초록빛 아래 숨겨져 있던 또 다른 고유한 빛깔을 드러낸다. 생존을 위한 광합성을 멈추게 되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고유한 에너지가 담긴 색이다. 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단풍의 화려한 빛깔을 보게 되는 것은 겨울이라는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잎을 떨구기 위한 과정이라고 한다. 삶의 고달픈 시기가 찾아오면 더욱 아름다워지다니…. 힘든 시기를 자신의 내면에 있던 또 다른 잠재력이 드러날 기회로 만드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꽃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나갈 때도 삶의 여정 중 겪게 되는 다양한 측면을 경험한다. 인생의 성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처럼 자신의 작품에 만족을 얻기란 가장 쉬울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나만의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하면 남들이 좋다는 것을 따라가게 되듯이 화병이 가득해져서 더 이상 꽃을 넣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멈추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잠시 물러나는 게 방법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먼저 느낀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자연스러움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어수선한 주변으로부터 돌아서서 나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꽃의 말을 화두 삼아 보낸 지난날 내가 들었던 목소리는 나의 내부로부터 시작된 울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연의 일부로 지구의 다른 존재들과 다르지 않음을 느낄 때 온전히 이해할 언어임을 예감한다. 곧 보름달이 뜨는 추석이다. 올해는 보름달을 달항아리 삼아 꽃을 담는 상상을 하며 소원을 빌어보면 어떨까? 그리고 며칠간만이라도 꽃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점점 기울어 가는 달을 지켜보자. 생과 사, 피어남과 짐, 만남과 이별, 시작과 끝이라는 자연법칙에 대한 가을 수업을 이어가 보자.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좋을 때가 가을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