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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대학원장의 주례사

양민주 시인·수필가

  • 양민주 시인·수필가
  •  |   입력 : 2023-09-19 19:22:1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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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계절이 따로 있을까? 대체로 바람이 선선한 가을에 결혼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바야흐로 결혼의 계절이 온 것 같다. 친구들이 며느리나 사위를 맞이한다면서 청첩장을 보내온다. 축하할 일로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젠 퇴직하여 월급을 받지 않으니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에 축의금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흐뭇하다.

나는 대학 교직원으로 일했는데 대학원 행정실에서 오랜 기간 근무를 했다. 대학원장을 가까이 모시면서 느낀 점은 인품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앞둔 제자들과 학교의 교직원들이 수시로 찾아와 주례를 부탁하고 갔다. 세월이 흘러 요즈음은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 생겼으나 예전엔 주례가 없는 결혼식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식에서 주례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어느 날 나는 대학원장께 “원장님 주례를 서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비결이 있습니까?”하고 여쭤보았다. 원장은 “주례사에 있지! 내가 지금까지 반백 쌍 이상 주례를 섰지만, 아직 이혼했다는 쌍이 없네. 이게 비결이지”라며 자랑스럽게 대답하셨다. 느닷없이 주례사가 궁금했다. 때마침 같이 근무하는 젊은 직원이 결혼하여 주례사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그 주례사를 생각나는 대로 써보면 다음과 같다.

결혼은 천년 바닷길을 신랑은 키를 잡고 신부는 노를 저어 사랑과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나서는 긴 항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부부간에도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번 맑으면 한번 흐린 것이 하늘인 것처럼 인생에도 언제나 밝음과 어둠이 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일생을 살다 보면 때로는 비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고, 눈보라가 휘날린다. 인생의 긴 항로를 함께 노 저어 가면서 지치고 힘겨울 때 서로 겸양의 자세로 남편은 아내의 입장에서, 아내는 남편의 입장에서 “힘들지요”라는 한마디의 말이 어떠한 절망과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는 절대적 힘이 된다. 남편은 아내의 온화하고 자상한 마음 쓰임새에 한없이 위안받고, 아내는 남편의 믿음직한 행동에서 남편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가지게 된다.서로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사랑의 꽃이 피어날 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효심과 형제간의 우애도 다져지게 마련이다. 행복한 가정의 튼튼한 주춧돌은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아껴주고 관심을 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주례는 두 어머니께도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오늘 두 어머니께서는 지극정성으로 화촉을 밝히시면서 ‘제발 행복하게 살아라’고 마음속으로 빌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신랑의 어머니는 며느리가 아니라 딸을, 또 신부의 어머니는 사위가 아니라 아들을 얻었다고 기뻐해 주시면, 신랑 신부의 결혼 생활에 큰 힘이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다.

주례사를 기억나는 대로 써보았지만, 여느 주례사와 별반 차이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도 당신이 주례를 서면 이혼을 하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을까? 그때를 다시 회상해 보면 원장은 ‘역지사지’를 힘주어 말했던 것 같다. 그랬다. 한 쌍도 이혼하지 않은 주례사의 비결은 역지사지에 있었다.

이혼의 갈등은 자기중심에서 생긴다. 이는 자기의 삶만 존중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상대를 생각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는 아집이 결국 이혼을 부른다. 조금은 내려놓고 상대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 어떨까. 이혼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역지사지해야 한다. 우리는 송두리째 역지사지할 수 있는 인간이다.

결혼의 계절이 따로 있을까? 따로 있을까만,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결혼도 삶에 있어 하나의 결실이다. 결혼의 뜻깊음을 깨닫는다면, 주례를 그 누가 서든 주례사를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한뉘는 파경 없는 축복이 될 것이다. 어린 아기의 볼처럼 탐스러운 결실의 계절, 이 가을에 결혼하는 신랑 신부들께 나는 크게 축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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