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정자가 없는 무정자증이더라도 고환조직을 수술해 수정 가능한 정자가 나오면 임신할 수 있다. 이 경우는 부인의 나이가 많지 않다면 시험관아기시술을 통한 임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고환을 수술해도 정자가 없는 경우다. 그래도 아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정자를 이용해야 한다. 본인이 직접 다른 사람의 정자를 구하지 못하면 정자은행을 이용해 아기를 가질 수 있다. 우리 병원은 정자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정자은행에 보관된 정자는 금전적인 대가를 주고 구입한 것이 아니고, 선의로 기증하려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정자다. 우리 병원은 정자가 절실히 필요한 난임부부에게 도움주기 위해 정자를 기증하겠다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이메일을 받고 있다.

그림= 김자경 기자

“안녕하세요, 정자기증에 대해 알아보다가 메일 드립니다. 2003년생으로 나이는 스물이고 특별한 질환은 없습니다.” “정자기증으로 난임부부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문의드립니다. 금전적인 지원은 받지 않겠습니다. 1998년생 하얀 피부 준수한 외모 신장 183.6㎝ 75㎏ 질병 無(생애 진료기록·수술기록 모두 공개 가능) 술 ×, 담배 ×, 정량적 스펙은 이 정도 됩니다.”

모두가 금적적인 대가를 받지 않고 정자가 필요한 난임부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선의의 마음으로 정자를 기증하려는 메일을 보내온다. 우리나라 생명윤리법에는 정자를 기증하는 사람에게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정자 제공자는 정자를 기증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비용이 들지 않고 단지 정자를 받아서 기증하면 된다. 이와 같이 정자은행 설립은 가능한데 난자은행을 설립하려면 먼저 생명윤리법에 저촉받는다. 즉 생명윤리법을 어겨야 난자기증을 받아서 난자은행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생명윤리법에는 정자를 기증하는 사람이나 난자를 기증하는 사람에게는 교통비 정도의 실무적인 비용만 줄 수 있으며, 금전적인 대가를 줄 수 없게 되어 있다. 정자를 제공하는 사람은 특별한 비용이 들지 않지만 난자를 제공하려면 많은 시술 비용이 필요하다. 즉 난임검사비, 고가의 과배란 주사약값, 난자채취 시술비, 난자냉동 처리비 등 수백만 원의 비용을 병원에 지불해야 된다. 또한 난자의 냉동보관을 위해 난자채취 날짜를 잡기 위해서는 3, 4번의 병원 방문이 필요하다.

이렇게 난자공여를 위한 시술 비용과 시간적인 소요는 난자가 필요한 사람이 난자공여자에게 충분한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생명윤리법은 난자제공자에게는 차비 정도의 실비 경비만 주어야 하며, 수백만 원이 드는 비용을 주면 생명윤리법을 위반해서 처벌받게 된다. 즉 임신을 위해 난자가 절실한 사람은 법을 위반해야만 난자를 구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프리카의 소들이 생존을 위해 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악어가 있는 강을 건너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미국의 경우는 돈을 지불해 합법적으로 난자를 구할 수 있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혈액형은 물론이고 백인 흑인 아시아인 등 민족에 따른 난자를 구별해 보관하고 있다. 학력과 신체조건에 따라서 난자 구입비용도 달라진다. 심지어 머리카락이 금발이고 대졸이면 구입비용이 더 올라간다. 유럽에서도 난자를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 심지어 난자 5개를 구입하는 비용이 홈페이지에 표시되고 난자공여로 시술 후 임신 실패할 경우 두 번째 난자 구입을 하면 할인해 준다는 문구가 홈페이지에 버젓이 실려 있다.

이렇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합법적으로 난자를 구입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여성의 늦은 결혼으로 인해 난임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40대 중반 넘은 여성이 자신의 난자로 시도해도 임신이 안되면 마지막 방법은 다른 사람의 난자를 공여받는 방법이다. 이런 분들에게 마지막 남은 임신의 희망을 드리기 위해 난자은행을 합법적으로 설립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