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에는 부산포개항가도라는 역사가도(歷史街道)가 있다. 부산진성공원(옛 자성대공원)에서 부산진시장·영가대 본터를 지나 부산도시철도 좌천역 3번 출구와 5번 출구 사이 역사스토리 골목에서 정공단·부산진 일신여학교·기미독립선언문과 동구 출신 독립유공자 기림벽, 안용복기념 부산포개항문화관을 거쳐 증산전망대까지 이어지는 2.5㎞ 정도 되는 길이 바로 그곳이다. 특히 좌천동 쪽 부산포개항가도는 항일(抗日)의 의미를 되새기고 임진왜란의 흔적과 국토수호의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많다. 광복절을 맞아 좌천동 부산포개항가도를 찾았다.
좌천역 3번 출구로 나와 역사스토리 골목으로 들어서니 동구를 빛낸 역사적 인물들이 먼저 반긴다. 골목을 나오니 정공단이 있다. 임진왜란 최초의 격전지였던 부산진성을 지키다 순국하신 정발 장군과 백성들의 원혼을 모신 단소(壇所)이다.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려 했지만 끝내 지키지 못한 이 땅에 다시금 일제가 침략해 식민지로 만들었던 그날들을 하늘에서 지켜보았을 정발 장군과 백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정공단을 나와 계단을 내려온다.
계단과 만나는 ‘정공단로’는 독립투사의 길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배출한 거리이기도 하다. 좌천동 가구거리 공영주차장 자리는 1920년 고서적상으로 위장해 부산경찰서장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모진 고문과 사형을 언도 받았지만 일제의 손에 죽을 수 없다 하여 26세의 나이로 단식으로 순국하신 박재혁 의사의 생가가 있었던 곳이다. 박재혁은 불꽃이었다. 단 한 번뿐인 불꽃을 조국의 독립과 바꾸고자, 단 한 번의 목숨을 내놓았던 화려하다 못해 눈물 나는 불꽃. 박재혁과 친구들이 거닐었을 정공단로를 되돌아 부산진교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정오연 생가터’ 간판이 보인다. 정오연 역시 1944년 순국당 사건으로 17세의 나이로 옥사한 독립운동가이다. 특이하게도 이곳은 박재혁 의사의 친구이자 부산의 모든 항일운동에 참가했다 알려진, 54회나 되는 구금과 구속에도 굴하지 않았던 최천택의 생가 자리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박재혁 의사의 투탄 사건의 공모자로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오재영(오택)도 이 거리에 살았다. 정공단 아래로 흐른 호국의 정신이 이 거리를 적시고 박재혁과 그의 친구들을 길러낸 것만 같다.
정공단 담벼락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니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라는 부산진교회 맞은편으로 조금은 특이한 외관의 붉은 벽돌건물 부산진 일신여학교가 나타난다. 일신여학교 건물 1층은 1909년, 2층은 1931년 증축된 건물로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 또한 부산 최초의 여성 교육의 산실이며 부산 최초로 3·1운동이 있었던 부산의 중요한 항일운동의 산실이다. 시집갈 때 혼수로 쓰라며 물려주신 옥양목(玉洋木)에 태극기를 그리고 1919년 3월 10일 좌천동 거리로 뛰쳐나가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일신여학교 학생들 역시 그 어느 꽃보다 아름다운 불꽃이었다. 당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김반수 할머니가 동래여고 교장선생님께 보낸 편지가 또 한번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뜨거운 마음을 식혀보려 바깥으로 나왔지만 맞은편으로 기미독립선언문이 새겨진 거대한 가벽이 필자를 마주한다. 기미독립선언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하지만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은 3·1운동의 시작점이었다. 기미독립선언문을 지나 길 끝에 오르니 동구의 독립유공자분들의 얼굴이 새겨진 벽이 나타난다. 김난출 김순이 박재혁 신정호 심순의 이광우 장건상 정오연 최익수 최복순 등 29명의 이름을 불러 본다. 한분 한분의 얼굴을 마주하며 다시금 나를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안용복기념 부산포개항문화관에 이른다. 문화관에서 부산 지명의 유래와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인 부산진성전투를 만나고 안용복이라는 위대한 인물과 독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국토수호의 의지를 만난다. 연구자들이 발견한 호패에 따르면 안용복은 동구 좌천동 사람이다. 1693년과 1696년 일본에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걸 ‘확인’받아 온 인물이다. 문화관 외부 데크에는 안용복이 일본에 타고 갔을 것이라 추정되는 도일선과 도일선전시관을 복원해 놓았다. 멀리 매축지마을과 부산항이 보인다. 매축지가 되기 전 이곳 바다가 1592년 9월 1일 이순신 장군이 왜군으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부산포해전’의 격전지라는 사실을 아는 부산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상하게도 가슴 한 켠이 간질거린다. 잊었던 내 안의 불꽃이 살아나는 것일까? 부산포개항가도에서 만난 뜨거운 불꽃들이 내게도 튀었나 보다. 되살아난 작은 불꽃을 살리고 더 키우고 싶은 의지가 솟는다. 국권을 되찾은 지 78년. 올해도 어김없이 광복절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