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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우리 집에는 과학자가 산다

정도준 부산일과학고 교사

  • 정도준 부산일과학고 교사
  •  |   입력 : 2023-08-14 19:33:23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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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무렵,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겠다는 아버지를 따라 작명소를 방문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작명가는 미리 준비해 둔 작명서 몇 장을 건넸다. 그리고 대뜸 종이와 펜을 주며 불러주는 것을 따라 적으라 했다. 이름과 사주 풀이를 해주시기에 열심히 받아 적었는데,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와 깜짝 놀랐다.

“이 사주는 에너지화학자가 되면 좋습니다.”

많고 많은 직업 중에 에너지화학자라니. 내가 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주변에 들려주니 ‘이건 운명이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몇 년 후 아이는 정말로 과학자처럼 행동했고, 우리 집은 연구실이 되었다. 낮에는 공학자가 되어 블록을 이용해 자동차와 비행기를 만들었고, 밤이 되면 천문학자가 되어 하늘의 별과 달을 보며 궁금증을 품었다. 주중에는 생물학자가 되어 베란다에 마련된 작은 텃밭에서 참외를 키우는데 몰두하고, 주말에는 뒷산에 올라 식물의 열매나 곤충을 관찰했다.

오해는 마시라. 사주팔자와 인간 운명 사이의 연관성을 주장하거나 아이의 행동을 자랑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누군가에게 사주팔자는 과학적이며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나침반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설득력이 부족한 미신일 수 있다. 내가 놀랐던 이유도 사주 풀이나 추천 직업에 대한 만족감 때문이 아니었다. ‘과학자’나 ‘화학자’라고 했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에너지’에 특화된 화학자가 된다고 하니 현실과 더 가까이 닿아 있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내 아이의 행동 또한 다섯 살 남짓한 아이에게 으레 나타나는 호기심과 그로부터 비롯된 놀이일 뿐이다.

작명가의 직업 추천에도, 어린아이의 놀이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온 건 분명 과학의 영향일 것이다. 오늘날 기후변화나 감염병, 에너지 고갈과 같은 문제는 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키웠다. 소셜 미디어나 스트리밍 서비스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의 확장은 과학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과거에도 과학은 강연이나 공개 실험, 출판물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결과로 대중들과 소통하는 것은 연구비의 많은 부분이 세금으로 충당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과학자가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행위였다. 대표적으로 영국 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강연’은 1825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져 올 만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견한 마이클 패러데이, ‘코스모스’의 저자로 잘 알려진 칼 세이건, ‘진화론’의 대중화에 앞장선 리처드 도킨스 등 당대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참여하다 보니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 제목이 ‘물리학자들이 알려주는 그네 잘 타는 법’이었는데, 연구 과정이 궁금해 원문을 찾아보았다. ‘물리학자의 연구는 역시나 이해하기 어려운 수식과 그래프로 가득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에게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구 결과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연구진은 ‘줄이 지면과 수직일 때 몸을 젖혀 추진력을 얻는 동작을 조금씩 빨리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네를 타는 사람의 몸무게나 줄의 길이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겠지만 열 번 정도 만에 정상의 높이에 오르기 위해서는 동작을 매번 7ms(밀리초)씩 빠르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밀리초를 인지하고 통제할 수 있을까. 혼자서 그네를 타는 방법이라도 알려줄 생각으로 아이와 함께 놀이터로 향했다. 아이를 옆에 세워두고 그네 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나도 과학자가 된 것 같았다.

과학의 힘은 축적된 지식에도 있지만 비판적인 사고나 합리적인 추론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에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과학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지는 것은 우리 삶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과학이 전문가의 영역을 넘어 대중이 즐기는 문화가 되는 것은 지극히 반길 만한 일이다. 물론 과학이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가정과 사회, 국가 공동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지금은 조금씩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한때 과학자였지 않은가?

여러분의 집에도 분명 과학자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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