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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이름을 불러주는 기쁨

이해인 수녀·시인

  • 이해인 수녀·시인
  •  |   입력 : 2023-07-20 19:20:58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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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 부르기



부르는 이름에 대답할 수 없는 슬픔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어서

죽은 이들은 가끔

사랑하는 이들의 꿈 속에 나타나

이름을 불러주나보다



1999년 어느 여름, 부산 광안리 바닷가 파도 앞에 선 이해인 수녀. 사진 유동영
나는 오늘도

꽃에게 나무에게 나비에게

그리고 함께 사는 이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새삼 행복하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동안은

마음에 잔잔한 강물이 흐르고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와

좀 더 겸손해지네

욕심 없는 마음으로 이름을 부르면

하루가 거룩해지네



지금껏 나는 얼마나 많은 이름을 부르며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이

이름이 불리어지며 살아오고 살아냈는지



고맙고 고마워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내가 아는 이름들을 향해

무조건 사랑한다며

가만히 목례를 한다



이 글은 제가 전에 써놓고 종종 다시 찾아 읽어보는 시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름에 대한 생각과 묵상을 누구보다 많이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요즘은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시인으로서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이름을 지어주는 네임이스트(namist)’임에 틀림없어.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가만히 웃어봅니다.

지난달 다녀온 서울국제도서전과 옥수동 성당 신간 사인회 때 버리지 않고 받아 들고 온 수백 장의, 이름 적힌 메모지. 차마 두고 오지 않고 집에 들고 와 다신 만날 길 없는 그들이지만 잠시라도 스쳐 간 인연을 기억하며 기도손을 모읍니다.

성당에 가서 혼자 기도하는 시간에는 종종 전체 회원 504명의 소임분류표 이름이 적혀있는 A3 크기의 인쇄된 종이를 앞에 놓고 기도합니다.

서울 대전 부산지구와 해외에 있는 이들의 이름들을 기억하면서 가만히 그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것 또한 하나의 훌륭한 화살기도가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하면서 말입니다.

어쩌다 한 번씩 지인들의 장례식장에 가면 빈소에 게시되어있는 고인과 가족들의 여러 이름을 보게 되는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 이름을 잠시라도 기억하며 저절로 기도하곤 합니다.



2. 비가 내리는 오늘, 각기 다른 이름표를 달고 서 있는 나무들에게 인사하며 일터로 출근하는 길이 즐겁습니다.

글방 앞 꽃밭의 여러 가지 꽃들도 은근히 이름 불러주길 기대하고 있는 표정입니다.

‘오늘도 조용히 그 자리에서 피어나느라 수고했어요’라고 꽃에게 말을 건네면 ‘오늘도 그 자리에서 힘든 순간도 잘 견디며 살아내느라 수고했어요’라고 덕담을 건네주는 것 같습니다.

늘 같은 시간에 저를 따라오면서 무어라도 좀 얻어먹을 궁리를 하는 진돗개 해솔이가 눈에 안 띌 때 크게 이름을 불러주면 나타나는 것 또한 신기할 뿐입니다.



많은 사람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
존재의 확인인 이름!



초등학교 시절, 여중고 시절 출석체크 시간에 선생님이 불러주던 내 이름은 늘 설렘을 안겨주곤 했습니다. 대학 강단에서 수업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면 네! 하고 씩씩하게 대답해 주던 그 많은 학생들은 다 어디 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지금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그들의 행복을 빌어줍니다.

‘꽃 이름 외우듯이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첫 만남을 시작하자’고 ‘꽃 이름 외우듯이’라는 시에서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

오늘도 서로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면서 사랑의 성숙을 도와주는 우리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살아있다는 건 그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고 이름부름을 받는 것이란 생각을 다시 하면서 이렇게 읊어봅니다.



사랑의 이름



내가 하늘 위에 쓴 이름들은 바다가 읽고

바다 위에 쓴 이름들은 하늘이 읽고

참 많은 이름들이 구름으로 파도로

꽃으로 피어납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항상 새롭게 부르며 나의 일생이 지나갑니다

오늘의 나를 키워 준 사랑의 이름 앞에

고맙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습니다



3. 곧 휴가철이 시작되어 아름다운 곳을 찾아 휴가를 떠나려는 이들에게 저는 며칠 전에 쓴 이 시를 작은 선물로 보내고 싶습니다.



수평선이 보고 싶어 바닷가에 나가

그냥

‘바다!’하고 가만히 말했을 뿐인데

가슴이 뛰다 못해 눈물이 나네

달려오는 파도에게

그냥

‘파도야!’하고 불렀을 뿐인데

또 눈물이 나네



집에 돌아와서

왜 그럴까 생각하다

잠이 들었지

꿈결에 흘리는 나의 혼잣말



산다는 게 언제나

끝없는 그리움이어서

그러나 실은

언젠가는 꼭

끝나게 될 그리움이어서

그래서 눈물이 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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