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는 고매한 인격의 군자를 만드는 책이다. 군자는 신사(Gentleman)로 번역하면 정확하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남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세련된 선한 교양인을 말하는 것이다. 논어는 학(學)이라는 글자로 그 첫 문장을 시작한다. 배울 학 자는 보통은 어떤 학문 분야의 전문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인격을 수양하는 공부를 의미한다. 그 인격 수양이라는 것은 일상적인 생활 속의 일이고 매우 구체적이다. 불효자에게는 효도를, 무례한 자에게는 매너를, 성질이 급한 제자에게는 느긋함을, 몸이 약한 제자에게는 건강을, 말을 많이 하는 제자에게는 말을 줄이라고 충고하는 공자의 말씀이 곧 논어다. 이런 논어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독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고전이고, 좋은 말로 구성된 이 책을 읽으면 저절로 군자가 되기를 다짐하게 된다.

필자가 강의하는 논어 교실에는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있다. 예전에는 학과 단위로 수업을 배정했지만 지금은 어느 과목이라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수강 신청해서 듣는다. 그런 교실에는 언제나 공부 잘하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모두가 진지하게 한마디 말도 놓치지 않고 필기하고 개중에는 강의를 나중에 다시 듣기 위해서 녹음하는 학생도 있다. 논어의 제1 학이편에 이런 말이 있다. “자기보다 못한 이를 벗하지 말고 허물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즉시 고쳐라(無友不如己者요 過則勿憚改니라).” 갑자기 한 학생이 큰소리로 질문을 했다. “그러면 저는 누가 친구를 해줍니까?” 자폐증 장애가 있는 학생이었다. 그는 오해를 받을까 봐 증명서를 목에 걸고 다녔다. 학생이 감히 공자의 말씀에 도전한 것이니 수강생 모두가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취지가 그렇다는 것이지, 꼭 글자 그대로에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시 한 달이 지났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왔다.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는 不器니라).” 여기서 그릇이라는 것에는 쓰임새가 하나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군자는 그릇처럼 하나의 용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이 문장은 한 가지만 잘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강조할 때 주로 인용된다. 이렇게 열강을 하고 있는데 또 그 학생이 질문했다. “그러면 전문가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 공자의 말씀과 그것을 그대로 해석해 주는 강의에 본격적으로 반기를 든 것이니 학생들은 교수님이 화를 낼 것을 예상하고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사실, 이 문장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었다. 그것을 학생이 지적한 것이다. 대학교 1학년 학생이 외국의 저명한 학자가 거론한 그 문제를 미리 알고 그렇게 질문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느낌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었기 때문에 비록 1학년 교양과목 교실이지만 학생들에게 논어에 대한 해외의 학술적인 논쟁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강의실에는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굿닥터’는 자폐증을 앓는 사람이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극복해 가는 이야기다. 여기서 전하는 메시지는 이들이 특별한 집중력으로 오히려 고정관념을 넘어 사물을 직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강의실에서의 실제 경험을 통하여 이것을 진실로 믿고 있다. 중요한 것은 기존 고정관념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그런 통찰력을 갖는 것이다.

최근에 인문학 열풍이 불고, 고전 강의도 많아지고, 어려운 고전을 쉽고 재미있게 풀이해 주는 책들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 사서삼경을 만화로 풀이한 것도 있다. 모두가 고전을 읽으면 좋다고 하지만, 직역해 놓은 책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런 책이 나오는 것이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일반 독자가 인문학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면서 또한 고전에서 전하려고 했던 핵심 취지가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도록 격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전에 나오는 글자 그대로의 말씀이 지금도 그대로 진리인 것은 아니다.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방식의 인문학 공부는 오히려 사람의 영혼을 속박할 수도 있다. 고전은 끊임없이 의문(疑問)을 품고 읽어야 한다. 그래야 그 고전이 전하려고 했던 본래의 정신과 만나게 된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대정향교가 있다. 아름다운 산방산이 보이는 경치가 좋은 곳이다. 근처 안성리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유배되었던 곳에 세워진 전시관이 있다. 이 향교는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이 전면에 배치된 것이 특징인데 그 뒤에 좌우로, 또는 동서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건물이 있다. 동쪽 건물을 동재라고 하는데 거기에 추사가 쓴 의문당(疑問堂)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공부는 이렇게 하라고 당부하시는 선생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