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부터 7월까지 일주일에 한 번, 부산 해운대의 한 중학교에 간다. 해운대도서관이 운영하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중학교의 자유학기제 수업에 파견 작가로 들어가 글쓰기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1학년 26명과 함께 독후감과 짧은 소설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수락해 놓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가지 말까, 고민했다. 학교에 찾아가 이렇게 많은 학생과 길게 수업하는 일은 처음이다. 심지어 한 반에서 두세 명씩 오는 수업에 억지로 온 친구도 있을 터였다. 그래서 수업안을 짜면서도 중학생이 된 지 두어 달 만에 글쓰기가 어쩌고 하는 내 얘기를 듣는 게 학생들은 버겁지 않을까 걱정됐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매일 아침, 학교 가기 싫었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불과 한 달 만에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이 바뀌었고 그것에 적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과서 내지가 흑백 톤으로 바뀌었는데 그것이 내 중학교 시절의 전체 배경색이었다. 혹시, 그래서 학교에 가기 싫은 걸까.

그때로부터 약 삼십 년이 흘렀다. 과거와 현재의 중학생은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를까. 결국 그것이 궁금해서 학교를 찾아갔다. 포스트잇 글쓰기로 첫 시간을 시작했다. 가로세로 약 8센티미터짜리 포스트잇에 딱 한 장만 써야 하는 글쓰기. ‘나는 이 학교 온 첫날이지만, 여러분은 두 달이 되었다. 학교생활 선배로서, 익명으로, 이 학교에서 발견한 것을 내게 알려달라’ 요청했다. 다행히도 26명 전원이 자신의 발견에 관해 썼다.

‘교복을 입어야만 한다’. ‘번호가 41번이 아닌 21번으로 시작해 신기했다’. 정보 위주의 문장이지만 나도 느꼈던 것들이라 반가웠다. 학교생활에서 얻은 감상도 있었다. ‘선생님들 성격이 다 달라서 혼란스럽다’. ‘저는 솔직히 급식이 맛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ㅎㅎ교도소에 온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중학교 생활, 정말 재밌군요’. ‘정문에 있는 꽃들이 많아서 예쁜 것 같다’. ‘통학버스 타봤는데 겁나 빠르다!’

가장 눈이 갔던 문장은 이거였다. “예쁜 애를 봤을 때 이 학교에 ‘오길 잘했다’고 느꼈다.” 이렇게 몰랑몰랑한 발견이라니, 마흔 넘어서 이런 문장에 ‘꺄악!’ 소리를 지르게 될 줄이야.

두 번째 수업에는 신문사에서 취재를 왔고 아이들은 의젓했다. 신문 기사를 보여줬더니, 자신의 뒷모습이 찍혔는지 유심히 살펴보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은 공들인 글을 보여주고, 글쓰기에 관심 없는 친구들도 포스트잇 글만큼은 성실히 써서 제출했다. 요즘 중학생들 무섭다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이 친구들에게 홀딱 반했다.

‘요즘 고민’에 대해 쓰는 날이었다.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남친이 있어여… 포기하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나는 차일 각오로 고백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대부분이 반대했다. 아이들의 고민 중에 ‘학원, 숙제’ 와 관련된 것만 10개였다. 숙제 때문에 피곤하고 화가 나고 친구와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걱정한다고 썼다. 가장 속상한 문장은 밤에 쉬고 싶은데 엄마가 공부를 더 시켜서 ‘개짜증’ 난다는 사연이었다. 지난밤 울기까지 한 그 친구는 초딩 때로 돌아가고 싶다며 ‘중학교 생활 ×같다’는 욕설을 남겼다. 아이들은 욕을 쓰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지적했다. ‘읽을 때 독자로서 불쾌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썼을까, 쓴 이유를 생각해 보자. 이 표현을 빼는 게 좋을지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지 말해달라’고 하니 그대로 두자는 쪽에 표가 더 나왔다. 분명 비슷한 1학년인데 ‘라떼’와 차원이 다른 고민이었다.

이렇게 매주 아이들의 발견을 마주하는 나는 6번째, 학교를 오가는 ‘길 위’에서 ‘아이들(사람)’을 생각한다. 길 위의 인문학은 결국 내가 배우는 일이었구나. 새삼 느낀다. 아이들에게 독후감을 쓰자고 이야기하다, 아이들의 포스트잇 내용으로 감상문처럼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마음의 포스트잇 한 장을 너희에게 보낸다. 너희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 학교에 ‘오길 잘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