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도로의 산복은 뫼 ‘산(山)’자에 배 ‘복(腹)’자로 이루어진 한자이다. 사전적 의미는 산의 허리를 지나는 도로이며 일반적으로 산의 허리를 관통해서 산동네와 산동네를 잇는 도로를 말한다. 그렇다면 부산의 산복도로는 언제, 왜 만들어졌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산복도로는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부산으로 이주해 온 이주민의 폭발적 증가와 산이 많은 지형적 특징이 만난 결과물이다. 부산역 뒤편의 북항은 1902년부터 매축이 시작됐다. 일본은 부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바다를 메우고 항구와 항만을 조성했다. 바다를 메우기 위해 동원되었던 조선인들은 쉴 곳이 없어 산 위로 올라가 가난한 조선인 부락을 만들고 살았다. 1945년 해방이 되고 부산으로 들어온 100만의 귀환 동포들 중 8만 명이 부산에 정착했다. 원주민들은 일본인들이 쫓겨난 평지로 내려왔고 귀환동포들은 산 위로 올라갔다. 1950년 벌어진 한국전쟁은 수많은 피란민을 부산으로 내몰았다. 상대적으로 풍부한 일자리가 있던 부산역 부산항 국제시장 깡통시장 자갈치시장과 가까운 원도심의 산이란 산은 피란민 판잣집으로 가득 찼다. 1953년 휴전이 되고 고향으로 돌아간 일부 피란민들의 빈집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들이 메웠다. 1950년대 중반부터 꿈틀대던 부산의 삼백산업과 신발 섬유 봉제 고무 합판 등 1980년대까지 이어진 경공업의 발전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원천이 되었다. 당시 시골에서 유입된 가난한 도시 노동자들은 피란민 판잣집 사이사이에 스며들거나 그들만의 공간을 산 위에 형성하면서 부산의 산동네는 더 넓어져만 갔다.
부산은 이주민들의 도시다. 1934년 15만 명이던 부산의 인구는 1945년 28만 명, 해방 후 1946년에는 36만 명이 된다. 전쟁이 나기 1년 전인 1949년 부산의 인구는 47만 명이고 전쟁 후 1년이 지난 1951년의 부산의 인구는 84만 명이며, 1955년에는 인구 100만 명을 넘긴다. 이후 1972년 200만 명, 1979년 300만 명, 1995년 389만 명을 정점으로 찍고 인구가 감소하여 현재 부산의 인구는 331만 명이다. 1934년을 기준으로 부산은 인구가 20배 이상 증가한 도시이며, 이는 부산이 원주민들의 도시가 아닌 이주민들의 도시임을 반증한다.
이주민들의 정착지는 산이었다. 살기 위해 원도심에 정착했던 이주민들은 산동네에 살며 생존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식들을 위해, 희망과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래쪽 평지로 내달렸다. 부산의 산동네 마을은 이주민들이 급하고, 거칠고, 목소리 큰 부산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고단한 삶을 바친 위대하고 엄숙한 공간이었다. 남들보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되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가족들을 지킬 수 없고 생존하기 힘든 삶의 전쟁터였다.
산복도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산이 많은 지형적 특징과 삶을 위한 몸부림으로 형성된 산동네와 산동네를 잇기 위해서다.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이주민들의 판잣집이 즐비했던 시절, 화재 식수 주거 등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1962년부터 만들어졌다.
부산에서 산복도로는 ‘산동네마을’을 의미한다. 다른 도시에도 사전적 의미만 살핀다면 산복도로가 있지만 부산처럼 산동네마을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얼핏 보면 낡고 노후화된 집들과 노인들만 남은 가난하고 힘든 산동네처럼 보이지만 부산의 역사와 부산 사람들의 삶을 품은 위대한 공간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산복도로에서 평생을 살아온 어른들도 가난하고 낙후된 산동네에 살고 있는 힘없는 어른이 아닌 지금의 우리 부산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만든 그 누구보다 평범하지만 그 누구보다 위대한 어른들임에 당당함과 자부심을 가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부산 사람들부터 산복도로를 다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산복도로에 미쳐 올해로 10년째. 산복도로의 매력을 알리고 여행으로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는 필자에게 가장 부산다운 모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산복도로에 서서 산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며 바다를 보는 것’이라 감히 말한다. 산복도로에 서서 바다를 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산 아랫마을, 즉 부산 사람들의 삶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산복도로를 만들고 살아온 우리 어른들의 삶과 부산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행위임을 알기 때문이다. 매일 산복도로를 오르내리고 산복도로의 골목을 여행하는 필자에게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 같은 명소는 어느 도시에나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이토록 넓은 면적의 ‘산복도로’를 품은 도시는 어디에서도 만나기 힘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외지인이든, 외국인이든, 부산 사람이든지 간에 지금까지 1500회가 넘는 여행으로 필자가 진심으로 보여주었던 산복도로는 부산의 시그니처이자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