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초등 4학년 의대 입시반까지 생기더니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학부모 선행학습 욕심과 학원 불안 마케팅의 환상적 만남이다. 바쁜 고객들에게 ‘뛰지 마세요, 위험합니다’는 문구가 무용지물이듯이 선행학습의 폐해를 아무리 얘기해 봤자 소용이 없다. ‘사교육 경감과 공교육 정상화’라는 진부한 정책은 해결의 실마리가 되지 못한다. 60여 년간 하세월하지 않았던가.

800ｍ의 금정산 고당봉은 2시간여의 산행으로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5시간을 올라도 꼭대기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얘기다. 계속 걸을 게 아니라 어디에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찾아야 한다. 우리의 사교육 문제 또한 그러하다.

서울의 어느 지하철 공사장 입간판 생각이 난다.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고치겠습니다’. 왠지 신뢰감이 간다. 이때 ‘제대로’는 잘 고치겠다는 뜻에 가깝지만 엄밀히 말하면 잘하는 것과 제대로 하는 것은 다르다. 잘하는 것은 사물의 모습, 즉 ‘사실’에 바탕을 둔 기계적인 것에 가깝다. 반면 제대로 하는 것은 현상을 있게 하는 그 무엇, 즉 ‘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진실은 표면적인 현상의 근본 배경까지 포용하는 총체적 실체를 의미한다.

한편 우리는 예사로 사교육 문제를 공교육의 부실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이게 진실일까? 유토피아적인 공교육(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이 이루어진다면 사교육 없는 세상이 올까? 명문대 진학이 신분상승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믿음이 강고(强固)하게 남아있는 한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대책은 몸의 열 때문에 생긴 부스럼에 머큐로크롬을 바르는 격이다. 제대로 고치려면 문제의 진실을 봐야 한다.

잠재적 소비자 중 소수만이 구매할 수 있고, 남들보다 우월해야 가치가 상승하는 재화를 경제학에서는 ‘위치재(位置財)’라 한다. 과시, 우월감, 체면 유지 등을 위해 구매하는 고급품이나 사치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명문 학교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좋아하는’이 아니고 ‘남보다 더 좋은’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초박빙 승부에서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끌어 올려야 하니 사교육을 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교육이 부실해서가 아니다. 더구나 사교육이 잘해서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학벌주의와 연관되어 있다. 이게 진실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1960년대 이래로 줄기차게 사교육 억제대책을 강구해 왔다. ‘중학교 무시험 입학’(1968년) ‘고교평준화’(1973년)에서부터 최근의 ‘사교육 경감 4대 과제 추진’(2022년)에 이르기까지 60여 년간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별무효과(別無效果)였다. 노력 부족이 아니라 방향을 잘 못 잡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2010년 3월 ‘수능은 EBS 교재와 수업에서 70% 나오니 학원 안 가도 된다’는 교육부의 발표가 있었고 그 해의 사교육비는 약 21조 원이었다. 그리고 12년이 흐른 지난 2022년은 약 26조 원으로 2010년에 비해 무려 5조 원이나 증가했다(5조 원이라는 돈은 단군이 우리나라를 세운 후 오늘까지 4356년 동안 ‘매일’ 315만 원씩 저금을 해야 만들어지는 엄청난 액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EBS 수능특강 연계’(70%에서 50%로 줄었지만)는 변함이 없다.

한때 서울의 웬만한 대학보다 지방거점대학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그리 크지 않았다. 결국 지방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선택의 범위를 넓혀주는 것이 사교육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구태여 SKY대학을 가지 않아도 무방한 사회를 만드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는 100여 년 전 신교육이 들어왔을 때 ‘사서삼경’을 배우고 과거 급제로 출세하던 500년 전통을 깨고 근대교육이라는 혁명을 이룬 경험이 있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사교육 문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옛일을 되살려 조금 늦더라도 이 정부에서 ‘제대로’ 고쳤으면 좋겠다. 문제는 사교육이 아니라 사교육을 있게 한 그것이다. 견월망지(見月忘指),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봐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희망을 주는 비전을 기대한다. 또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