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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소변 모아 뭣에 쓰게?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  |   입력 : 2023-04-02 19:53:1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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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역사 격랑 속에 휩쓸리던 그해 나는 중학 1학년이 되었다. 까까머리, 애국 조회, 거수경례, 영어 수업…. 모든 것이 생소했지만 특히 이상했던 것은 화장실에 일렬로 줄을 선 ‘오줌통’이었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오줌을 모아 담는 커다란 반투명 플라스틱 통이었다. 통에는 모 제약회사의 마크가 찍혀 있었다. 처음엔 영문을 몰랐고 영 어색했지만 어느새 적응되고, 나중에는 아예 무신경해졌다. 그 노란 오줌들이 모여서 어디로 가는지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십수 년의 시간이 지나 까까머리 중학생은 어느덧 신경과 전공의가 되어 어느 날 응급실에서 급성 뇌경색 환자 한 사람을 진료하게 된다. 지금의 나보다는 젊은 중년의 남자였다. 우측 팔다리 마비가 있고 실어증이 생긴, 전형적인 좌측 뇌경색 환자로 드문 경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특별한 것은 가족들이 환자를 아주 신속하게 병원으로 모시고 온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골든타임 안에 병원에 도착한 것인데 그럴 경우 우리는 아주 특별한 선택지 하나를 더 가진다.

혈관이 막힌 지 몇 시간 이내라면 우리는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핏덩이)을 녹여버릴 혈전용해제 주사를 쓸 수 있다. 당시에만 해도 뇌졸중이 생기면 하루 이틀 지켜보며 엉뚱한 치료를 받다가 나아지지 않으면 병원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골든타임이 지난 상태에서는 이 주사제를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쓸 수 있었으나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싼 약값이 문제였는데, 보호자가 큰마음을 먹고 승낙했다. 준비가 시작되었고 약제실에서 약병 30개가 왔다. 약 포장을 풀면서 큰 주사기에 옮겨 담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약 이름이 왜 ‘유로키나제(urokinase)’일까 궁금해졌다. 유로(uro-)란 ‘오줌’이란 뜻인데. 바로 그때 중학교 화장실에 일렬로 늘어선 오줌통에 찍힌 제약회사 마크가 번쩍 떠올랐다. 아, 이 제약사구나! 그렇구나 그 오줌으로 이 주사제를 만들었구나.

여기저기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내 생각이 맞았다. 1970, 1980년대에는 제약사에서 모은 오줌을 외국제약사에 약품 원료로 수출했다.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외화벌이 일꾼이 된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그 약을 우리도 수입해서 쓰게 되었다. 그 시절이 국내 사용 초기였다.

그런데 굳이 남자중학교에서 원료를 채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비교적 오염이 덜 된 원료라서 그랬겠지? 그러고 보니 1990년대에는 고속도로 휴게소 남자화장실에서도 오줌을 모으는 통이 있었다. 오래지 않아 사라졌고 원료를 중국이나 북한에서 모으기도 했다. 그 이유는 원료 청정지역이라고. 그럼 우리나라는 오염지역이란 말인가? 논란거리가 될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하겠지만 이제는 원산지 논쟁은 의미가 없어졌다. 지금은 ‘자연산(?)’을 쓰지 않고 화학연구소에서 합성하니까.

유로키나제 주사는 당시 돈으로 300만 원이었다. 나의 4개월 치 월급에 맞먹는 큰돈이었다. 하지만 효과가 나오면 정말 극적이다. 주사가 들어가는 도중에 환자의 말문이 터지고 팔다리가 움직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의사들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 부작용으로 치명적인 뇌출혈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환자가 좋아진 후 다시 부작용이 생겨 나빠지면 가족들의 고통은 몇 배나 가중되었다. 치료비도 많이 쓰고 효과도 없으니 그 고통이 말도 못 하게 컸다.

초창기 국내 연구에서도 출혈이 많이 생겨 의사들 사이에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뇌졸중으로 골든타임 내 병원에 오는 환자가 거의 없어 고민할 기회조차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 번만이라도 쓰게 되면 극적인 효과와 잇따르는 부작용이 트라우마처럼 평생 잊지 못한다. 다행히 지금은 고민 없이 훨씬 더 안전한 혈전용해제인 tPA라는 주사제를 쓴다. 하지만 이 역시 출혈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골든타임 안에서만 쓴다. 환자가 생기면 무조건 응급실로 모셔 오라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골든타임 안에 가면 생존과 회복 가능성이 그만큼 올라간다.

인간은 동물과 식물은 물론 인간의 몸속에서도 약을 캐냈다. 화학과 생명공학의 도움으로 지금은 대부분 합성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인간의 몸은 신약의 보고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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