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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큰 기대에 쉽게 기대지 말자

김민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김민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   입력 : 2023-03-26 19:23:43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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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 평소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를 할까? 힘들거나 속상할 때 많은 이들이 가족이나 지인 친구들을 먼저 떠올린다. 데면데면한 직장동료가 나에게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고 서운한 경우는 그리 잘 없다. 마찬가지로 처음 만난 사람이 살짝 실수를 했다 해도 여운이 오래 남지 않는다. 그런데 그 대상이 나에게 가까운 사람이라면 확연히 달라진다. 나는 그때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위로하고 도움까지 줬는데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네? 혹은 내가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는데 자녀들이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대할 수가 있지? 하고 무척이나 실망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이 생기는 이유는 바로 큰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요즘 상담할 때 내담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제가 ○○였다면 저에게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거 같아요.” “저였다면 좀 더 다르게 행동할 거 같아요.” 누군가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이렇게 실망과 더불어 덤으로 내 마음에 원망과 상처까지 남긴다. 겉보기에 상대가 매우 부유해보여서 그 정도 금액쯤은 쉽게 빌려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거나, 상대의 입장이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는 쉽게 수긍하리라 기대하고 요청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실제로 누군가에게 육체적 심리적 피해를 입은 경우라도 그 대상에 대한 분노나 실망보다도 가까운 사람의 무심한 태도에 훨씬 더 실망하고 그 여운이 오래간다. 그 순간 위로를 받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심하고 불안한 상태라면 그 실망이나 원망은 배가 되기도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다가오는 생일에 배우자가 멋진 선물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면 마음이 설레고 기대하게 된다. 이것을 뇌 과학적으로 해석하자면 기대하는 순간 이미 우리 뇌에서는 보상에 관여하는 도파민 분비가 늘어나며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이 가장 설레어서 여행지를 검색하거나 면세품 쇼핑을 할 때가 오히려 가장 들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멋진 선물을 기대하라고 했던 배우자가 내 생일을 잊고 넘어가버렸다면? 혹은 잔뜩 기대했던 여행이 날씨나 기타 변수로 취소가 되었다면? 그 실망은 기댓값의 몇 배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지 모른다. 즉, 기대하거나 실망하는 정도를 수치로 환산할 때 기댓값보다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의 실망 값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박사는 ‘손실회피 편향’이라고 했다. 배우자가 선물을 할 것이라고 말한 순간 가상의 물건은 이미 내 소유가 되었고, 여행을 계획한 순간 당연히 여행을 갈 수 있으리라 소망한다. 그 기대가 내 영역에 들어온 순간 우리 안에 그것을 계속 소유하고자 하는 기대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큰 동기부여가 되고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양날의 칼처럼 실망한 우리를 다치게 하고, 실망시킨 상대와 거리를 두게 만든다.

요즘 우리 주변에 기대가 실망으로 가득 찬 경우가 많이 보인다. 이렇게 화가 나고 실망한 많은 사람이 실망이나 슬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짜증이나 분노라는 단단하고 뾰족한 겉옷을 껴입으며 가까운 사람을 대하기도 한다. 한편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분노는 이렇게 돌고 돌아 우리들에게 몰래 상처를 입힌다. ‘그럼,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나요?’ 맞는 말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설레고 꿈꿀 자유가 있다. 다만 그것이 꽤나 유동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실망을 끼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건강한 나 자신을 위해서다.

새해가 된지 달수로 석 달이 지나간다. 새해를 맞아 기대했던 것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꽉 찬 스터디 계획일수도,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빡빡한 운동 일정이었을 수도 있다. 그 기대에 더불어 결과를 떠올리며 설레었다면 지금 잘 해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실망도 클 것이다. 세상에 대한, 상대방에 대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기대치를 조금 내려놓자. 과도한 기대 대신 사소한 변화에도 매사 감사하며 현재에 집중하다보면 어느 날 의도치 않게 큰 기쁨이 찾아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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