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매우 독특한 소금 생산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바로 ‘돌염전’이다. 넓고 편편한 현무암 지대에 찰흙으로 테두리를 만들고 여기서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하던 현장이다. 매우 단순하고 유치해 보이지만 이 돌염전은 무려 390여 년 동안 제주 서부지역 주민들에게 소금을 공급했던 중요한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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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0여 년 동안 소금을 생산한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돌염전. |
소금의 주성분은 나트륨이다. 나트륨은 우리 몸에서 여러 가지 생리 기능을 조절해 주는 필수 미네랄의 일종이다. 부족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데 나트륨은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는다. 반드시 염분(소금)으로 섭취해야 한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등은 음식 섭취를 통해 공급받을 수 있지만 나트륨은 염분이 아니고는 불가능했다.
소금은 염호나 바닷물 등을 증발시키거나 소금 광산에서 암염을 캐는 두 가지 방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인류 문명의 대부분이 강 하구에서 시작된 것은 곡식을 재배할 수 있는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물도 필요했지만, 소금을 얻을 수 있는 바다도 가까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다가 있다고 해서 어디서나 소금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닷물을 증발시킬 수 있는 넓은 갯벌이 있어야 하고, 기온이 높고 햇볕과 바람이 충분해야 했다. 곡식을 재배하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환경이 필요했다.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소금은 제한된 곳에서만 생산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인류 최초로 국가를 넘나드는 무역 상품이 되었다.
한반도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소금을 만들 수 있었다. 남해와 서해에는 갯벌도 풍부했다. 소금을 얻기 위한 천혜의 환경이 따로 없었다. 심지어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었다. 이는 곧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가 풍부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한반도에서는 고대로부터 소금을 얻기 위해 ‘자염법’을 사용했다. 자염은 말 그대로 바닷물을 끓여서 얻는 소금이다.
한국 음식의 발달 배경에는 소금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풍부한 소금은 발효의 근간이 되었다. 채소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시작된 소금 절임에 미생물이 관여함으로써 발효가 진행되었고 이를 활용해 김치와 장아찌를 만들었다. 삶은 콩을 발효시킨 메주를 소금과 함께 항아리에 넣어 거듭 발효시킴으로써 된장과 간장을 얻었다. 다양한 해산물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킴으로써 젓갈을 얻었다. 된장 간장 김치 장아찌 젓갈이 빠진 한국 음식을 상상할 수 없듯이 소금이 빠진 된장 간장 김치 장아찌 젓갈 또한 상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소금은 곧 한국 음식의 근본이며 시작이다.
하지만 제주도(특히 서부지역)는 사정이 달랐다. 사방이 온통 바닷물이지만 바닷물을 증발시킬 넓은 갯벌도, 바닷물을 끓일 땔감도 충분하지 않았다. 바위 위에서 바닷물을 말려 아주 적은 양의 소금이라도 얻어야 했다. 그래서 제주도는 섬이라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소금이 귀했다. 소금이 귀하니 배추도 바닷물에 절이고 된장은 담아도 간장을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양념이 강하지 않다거나, 김장 문화가 따로 없다거나, 물회에 고추장 대신 된장을 넣는 등의 제주식 식문화는 모두 소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구엄리 돌염전은 단순히 과거의 소금 생산 흔적이 아니라, 제주 식문화가 시작된 매우 인문학적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