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한 지 8년.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이 쌓여서 ‘중견’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렇지 않아도 문화기획자는 지역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다 이제는 주변의 동료나 후배들 걱정을 조금 더 해야 하는 위치가 된 것이다. 이제 막 이 길로 접어든 후배들에게선 고인물이란 소리를 들어야 하며 위에 선배들로부터는 눈치를 봐야 하는 쉽게 말해 ‘사이에 끼인 세대’가 된 것이다.
나는 문화기획자로서 활동하며 전문 업자들을 통해서 일을 하기보다는 지역의 청년, 문화예술인, 주민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성장을 돕고자 노력하며 많은 파트너들을 찾아 협업하고 있다. 물론, 여러 사람들과 협업하다 보면 실망하거나 다칠 때도 있지만 문화기획자로서 나의 길이자 사명은 이런 판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기에 더더욱 책임감과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열심히 활동하다 조금 이름이 알려지고 인정받을 때 “쟤는 누구냐?”는 따가운 눈총과 시선을 이겨내야 했고 심지어 계약했던 건이 민원으로 인해 취소되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우리 지역에서 인정받기를 기다리고 일거리를 찾기보단 나의 능력을 신장시켜 전국 단위에서 인정받아 역으로 우리 지역에서 나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노선을 선택했다. 우리 지역에서 동료들이나 후배들과 밥그릇 싸움을 하기보단 외부의 자원을 끌어와서 판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주변에서 놀랄 만큼 빠르고 또 굳건히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지역에서는 아직 동네 청년이나 능력이 부족한 후배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우리 지역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들며 자리 잡기 어렵다는 탄식을 듣곤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거나 먼저 시작했던 사람들도 그사이에 전업을 한 사람들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비율보다 훨씬 큰 것을 보면 어렵고 힘든 분야에 환경까지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지금도 선배들을 만나면 “그거 다 해본 거다”, “우리 지역에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있다. 많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환경이 변하고 다양한 삶의 모습과 욕구가 충돌되는 시기에 어느 하나 똑같지 않음에도 후배들이 하는 것들은 이미 다 해본 것들이라고 ‘퉁쳐’ 버린다. 정확하게 분석해보면 전혀 다른 방향과 활동임에도 키워드가 똑같거나 주제가 비슷하면 해본 것이라고 뭉개버리니 한발 늦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더욱 확장하거나 성장시키기에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환경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지역을 떠나거나 전업하면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어쩜 이들은 등 떠밀려 떠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지역에선 주변에 동료가 쌓이지 않고 뉴스타를 찾거나 아직도 동료 찾기에 급급한 것을 보곤 한다. 나는 다행히도 시작할 때부터 동료들과 함께하는 네트워크 운영과 동시에 양성을 지원하여 자체적으로 파트너들을 육성해왔기에 협업자들을 찾아 헤매지는 않아도 된다. 매년 새로운 협력자들을 1~20명씩 찾고 함께 프로젝트를 끌어나가는 노력을 보지 못한 채, 지역의 한 선배는 매번 똑같은 사람들과만 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는 선배들이야말로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후배, 패밀리를 챙기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들이 자기 사람들을 챙기기 위함인지 정말 사람이 없다고 판단이 돼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항상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현장을 마주할 때면 신물이나 다시금 지역을 향한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자기 사람들만 함께 하며 하찮고 귀찮은 일들만 후배들에게 던지는, 또 자기 말 잘 들을법한 사람들을 성급하게 밀어주고 키워주는 현상들이 우리 지역의 환경을 더욱 척박하게 만들고 착실하게 일하는 후배들이 더욱 버티기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너희가 하려는 것들은 다 해본 것들이고 우리 지역엔 괜찮은 사람이 없다”는 편협한 시선은 우리 지역의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주문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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