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가지다. 마치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샛노랗게 뻗은 줄기가 몸피에 소복이 달렸다. 누가 노란 물감을 양동이째 뒤집어씌운 것일까, 혹여 색 있는 나무 소독제라도 듬뿍 뿌렸을까. 아니면 벌써 꽃눈 틔운 가지가 사방으로 부풀어가고 있는 순간일는지.

첫물 찻잎이 막 돋은 차밭 길을 걷는데 노랗디노란 나무 한 그루가 엇비스듬히 비탈길에 서 있다. 그 신기한 나무를 두고 일행들은 휴대전화 렌즈를 가까이하여 사진찍기에 바쁘다.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보기 어려운 수목인지라 말채나무니 생강나무니 멀구슬나무니 하고 제각각 엉뚱한 나무 이름을 대다가 급기야 인터넷 검색창에서 답을 구한다.

황금빛 줄기를 뿜어내는 이 나무가 바로 황금회화나무란다. 잎이 있을 때는 가지가 연녹색으로 있다가 잎이 떨어지면 기존 회화나무와는 다르게 줄기가 놀랍게도 황금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고는 겨울 혹한과 폭설 속에서도 자기 색을 지키고 당당하게 버텨낸다.

자기만의 색을 갖는다는 것,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금붕어는 빨갛고 민들레는 노랗고 브로콜리는 초록이며 복숭아는 분홍빛이고 강물 색은 푸르다. 색깔은 자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드디어 인간은 무형한 것에도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 예로 색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기업인 팬톤사는 해마다 올해의 컬러를 발표한다. 지난해에는 ‘베리 페리’라는 보라색이 선정되어 패션 리더들의 머릿결까지 물들이더니, 올해의 색은 ‘비바 마젠타’라고 불리는 붉은 핑크로서 이미 봄꽃보다 먼저 쇼윈도와 거리의 물결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비바 마젠타의 모티브는 0.5cm의 작은 연지벌레에서 나왔다. 이 곤충은 중남미 선인장에 서식하는데 자연 염색으로는 가장 강력하고 붉은 천연염색이 가능하다고 한다. 녹차 아이스크림에 누에 똥이 들어가서 더 선명한 색이 되듯 딸기 우유의 붉은 색소에 사용하는 그 연지벌레가 맞다. 어쨌든 비바 마젠타색은 우리나라의 붉은 진주라는 타이틀이 붙은 머루와인이나 핏빛 동백 같은 복분자주 색깔을 연상하면 되겠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작은 벌레의 색이 열정과 도전과 반항 정신을 가진 자를 환영한다는 뜻이라니 아주 매력적이다. 매사 어정쩡한 내가 요즘 들어 반항이나 저항 같은 단어가 마음에 쏙 드는 참인데, 비바 마젠타의 선홍빛이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색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았는가. 얼마나 따분하고 권태롭고 지루할까. 멕시코 신화에 색동 앵무새 과카마야 이야기가 있다. 신들이 만든 색을 잊지 않으려고 과카마야 앵무새의 몸에 칠해 놓았다는 내용이다. 신화에 따르면 세상이 열렸을 때는 오직 두 가지 색깔밖에 없었다. 밤의 검정과 낮의 하양이었으니 신들은 다채로운 색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으고 각자 길을 떠난다. 생각에 골몰하던 어떤 신이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흘린 피에 빨강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다른 신은 들녘에서 녹색을 찾고, 땅의 심장이라 생각한 커피 씨앗을 발견하여 갈색이라고도 명명했다. 그들은 쉴 틈 없이 찾은 색들을 작은 상자에 넣어두고 잠을 잤는데 색깔들이 서로 사랑을 하여 다채롭고 새로운 색들이 태어났다. 물론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은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덧붙여져 있다.

그러니 이 언덕의 차밭이 ‘녹야청청’하고, 황금회화나무가 잎눈을 틔우려 노란 가지를 뻗고, 연지벌레가 매혹적인 비바 마젠타색을 발산하는 것도 모두 제 몸을 지켜내기 위한 색의 말이 아닌가. 이제 막 작가의 길로 들어선 후배 수필가도 자연에 뿌리를 둔 색의 언어들을 해독한 눈치다. 글을 쓰니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무엇보다 자신의 언어를 갖는 것이 좋아요.”라고 답을 한다. 그렇지, 자신의 색이 짙어질수록 뿌리의 힘도 더욱 단단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