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봄이 열렸다. 대지의 창조가 빛깔을 드러내며 꽃을 피우는 시기!

이맘때면 어릴 적 나는 먼 땅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찾곤 했다. 주로 하늘과 땅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빈터에서였다. 길을 걷다가도 아지랑이가 보고 싶어 눈을 반쯤 감고 걷기도 했다. 실눈을 뜨면 더 잘 볼 수 있었다.

처음엔 일렁이는 그 모양을 보고 귀 기울이면 들릴 것 같은 대지의 소곤거림이라 생각했다. 아득한 곳에서부터 전해지는 진동과 같았다. 그것을 보고 느낄 때마다 드러나지 않은 맨살이 간지러웠다. 그러면 가만히 숨을 죽이고 괜찮아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지랑이는 봄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쬘 때 공기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빛의 굴절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나를 설레게 하던 신비한 힘은 서서히 사라졌다. 때마침 내가 사는 동네도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하천을 덮는 복개공사와 빈터를 덮던 시멘트, 아스팔트길이 늘어 갈수록 땅에서 솟아나던 아지랑이의 몸짓을 찾는 일은 어려워졌다.

그런데 며칠 전 색채에 대한 공부를 하던 사람들과 점심식사를 한 뒤 하늘과 물, 그리고 숲이 보이는 곳에 잠시 머물 때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높이 떠 있던 태양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지랑이가 생각났다. 여전히 기온은 낮고 눈에 보이는 풍경도 겨울이었지만 모두들 봄이 임박했음을 느꼈다. 빛이 달랐다. 땅 위의 생명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그때, 빛이 있었기에 아지랑이도 보고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빛과 함께 있었기에 이른 봄날 땅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며 ‘다가오는 희소식’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봄’ 하면 떠올릴 수밖에 없는 꽃들도 마찬가지다. 빛이 있기에 볼 수 있다. 저마다의 빛깔을 지닌 꽃들은 누가 보아도 알아차릴 선명한 빛깔을 그대로 드러내며 아름다운 에너지를 온 세상에 전한다. 개나리의 노란빛깔을 보고 활력을 느끼고 매화나 벚꽃의 분홍빛깔을 보며 설레는 사랑을 품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그 가운데서도 마른 가지에서 돋아나는 어리고 부드러운 새순의 연두빛깔은 다시 시작할 희망과 삶에 대한 의지를 전해준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사람에게도 자신만의 고유한 색이 있다. 그것을 개성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몸에서는 빛이 나온다. 한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사람의 신체에서 발산되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나 은은한 향기를 오라(aura)라고 하며 물건을 에워싸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는 아우라(aura)라고 달리 표기한다.

오라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며 그 빛깔이 다를 뿐이다.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은 이 빛을 실제로 본다고 한다. 또한 전통적인 요가수행자들은 몸의 경락을 따라 흐르는 각 주요한 부위인 차크라를 색채로 나타내며 각각의 빛깔에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고 설명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의 나는 어떤 빛깔일까?

피어나는 꽃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빨갛고 노란 색으로 물들어 있듯 사람의 몸을 감싸고 있는 빛깔도 모두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지금 자기만의 빛깔을 잃고 힘들게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모두는 각자의 고유한 빛깔을 타고 태어났으며 그것은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 봄날의 꽃들처럼 자신만의 빛깔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다면 자신의 내면에 빛을 비추면 된다. 대지의 모든 생명들이 추운 겨울을 견디고 새롭게 시작하듯 사람도 자기 빛깔을 드러내며 다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은 또한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힘을 주는 일이 될 것이다.

때마침 봄이다. 따뜻한 햇살이 몸을 통과하는 것을 느껴보자. 감각과 인식의 문을 열어보자. 잊고 지내던 봄날의 아지랑이가 먼 곳에서가 아닌 각자의 몸에서 일렁이는 것을 지켜보자. 새 생명이 시작되는 대지의 진동처럼 우리의 내부에서 소리치고 있는 음성, 각자의 삶에 부여된 순수한 목적이 들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