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문신 이승휴가 우리나라와 중국 역사를 운율시 형식으로 서술한 ‘제왕운기’(1287년)에 동명성왕의 탄생에 얽힌 술 이야기가 나온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하백의 딸 유화가 정이 들어 낳은 아들이 주몽, 즉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이다. 해모수와 유화가 정분을 맺는데 술이 한몫 했다고 한다. 술에 관한 우리의 첫 기록으로 꼽힌다.
물론 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조상의 모습은 이보다 1000년가량 앞선 중국 역사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진 사람인 진수가 280~289년께 편찬한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이다. ‘영고(부여), 동맹(고구려), 무천(동예)의 제천의식에서 술 마시고 춤 추었다는 기록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온다’는 대목은 역사 시간에 들었던 그대로다.
술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했으니 우리 술도 농경시대와 함께 본격화했으리라 짐작된다. 술이란 말도 그렇다. 술의 발효 과정을 표현한 수블이나 수불이 술로 변화한 것으로 유추하는 견해가 인상적이다.(우리 술 이야기·2011·농촌진흥청) 곡식과 누룩을 넣어두면 열을 가하지 않아도 부글부글 끓어 난데없이 물에 불이 붙는 현상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원래는 물불이지만 한자로 물이 수(水)이므로 수불-수울-수을-술로 변화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서 물에 주목하면 알코올 농도와 관계없이 물을 술로 대접하는 일이 예사롭지 않다. 제사 때 술 대신에 쓰는 맑은 찬물이 무술이고, 한자로는 현주(玄酒)다. 물이 술이 아님은 명백하지만 물을 술로 삼을 수도 있는 셈이다. 까다롭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다도에선 물만 끓인 백비탕이 어엿한 차의 한 종류로 자리하고 있다.
‘하늘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주성(酒星)이 하늘에 없었을 것이고/땅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땅에는 응당 주천(酒泉)이 없었으리/천지가 원래부터 술을 사랑했으니 술 사랑은 하늘에 부끄러울 일 아니리’. 이태백은 이렇게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주선’(酒仙)임을 선언했다. 술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겠으나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는 소줏값은 “소주 한 잔”이란 말도 주저하게 만든다. 술집에서 소주 1병에 6000원 하는 세상이다.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설 정도다.
술값을 여러 사람이 분담하고 마시는 술추렴 대신 이태백이 읊었듯 달빛 벗삼아 홀로 무술 한잔으로 헛헛한 마음을 달래야 하나, 그게 섭섭하면 백비탕으로 입가심해야 하나.
정상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