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명태를 본 적 있는가. 명태는 썩지 않는 철에 잡혀 어느 한 부분 버려지는 게 없다. 함경도 명천 지방 어부 태 씨가 잡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인 명태. 식탁에 허물없이 어울리는 이 생선은 생태 동태 황태 코다리 노가리로 먹거리를 베푼다. 옛적 곤궁한 살림에도 무미한 듯 개운한 생선 맛을 알게 한 것도 동태다.

북극발 한파가 덮쳤을 때 북엇국을 심심찮게 끓였다. 북엇국이 추위에는 최고더라는 맛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서다. 먹기 좋게 자른 북어포를 들기름에 달달 볶아 끓이면 국물이 뽀얗게 우러난다. 이 북엇국은 무 달걀 파 정도만 들어가도 그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기실 명태 맛은 밍밍하기 짝이 없다. 이를 두고 ‘우리 입맛에 순응하기 위한 담백성 때문’이라고 한, 목성균 수필가의 해석을 곱씹게 된다.

뭔가가 일상에 깊이 스며들면 오히려 관심권에서 벗어난다. 어느 날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서 새삼스럽게 보게 되는 대상이랄까. 명태가 그렇다. 북어는 무엇이고 황태는 무엇 이름인가. 일말의 사색 없이 그저 북엇국을 끓이고, 식당에서 코다리찜을 먹었다.

무수한 이야기를 품었을 법해 문득 그리워지는 대상이 있다. 매서운 날씨에 알몸으로 매달려 황태를 꿈꾸는 명태, 명태가 떼로 매달려 숙성돼가는 덕장을 보고 싶었다. 강원도 고성군 북방식 전통마을인 왕곡마을에 들를 겸, 인제군 용대리 황태덕장을 찾았다. 1월 중순 용대리 기온은 영하 11도. 눈 앞에 펼쳐진 산야가 눈 세상이다. 눈의 고장 북해도보다 낫다며 가지 못함을 대리만족한다. 국내 황태 70%를 만드는 지역답다. 간판마다 황태 일색이다. 황태덕장을 찾아서 눈길을 오갔다. 한길에서 벗어나 산자락으로 접어들자 길을 따라 까맣게 도열한 명태 떼가 보인다. 야호, 덕장이다. 유레카를 외친다. 얼기설기 엮은 듯하지만 굳건해 보이는 나무 지지대에 거무튀튀한 명태가 빼곡하다. 연병장에 도열한 군인 같다. 주변에 명태 냄새가 자욱하게 드리웠다. 빈틈없이 걸린 명태 사이로 얼핏얼핏 움직이는 사람이 보인다. 덕장 주인이다. 허락을 받아 눈밭 덕장으로 들어섰다. 짐승들에게 세금 내는 것도 만만치 않단다. 밤사이 고양이 까마귀 삵 같은 동물이 뜯어 먹고 흘린 명태를 주워서 다시 걸거나 거둬들이는 중이다.

이런 덕장 네 곳에 걸린 명태가 230만 마리 정도라고. 속초에서 내장을 빼는 할복 작업을 끝내고 이곳으로 온다. 영하날씨에 전부 얼었다. 걸린 지 일주일 된 명태는 생태 색에 가깝다. 20일 된 명태는 찬기를 쐰 시간만큼 누리끼리하다. 4월까지 얼녹으며 생태는 황태로 거듭날 것이다. 그냥 말린 북어와 넉 달에 걸쳐 자연 기온에서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마른 황태 차이를 알게 된다.

명태 코를 꿴 줄 색이 구역별로 다르다. 빨강 노랑 파랑 노끈은 명태 크기를 구분하는 표시다. 제수용으로 나가는 크기에서 노가리 크기에 이르기까지, 전문용어로 3통에서 13통 정도다. 각자 구역에서 아가미 벌린 채 꽁꽁 얼어 열반에 들었다. 이런 명태 무리 속에서 사뭇 경건해진다. 덕장에서 보는 명태는 명태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머니가 언 듯 차가운 무를 칼로 툭툭 삐져 넣고 끓인 멀건 동탯국이, 지난 시절 농촌의 가난한 부엌이 떠오른다. 비릿한 듯 비리지 않은 콤콤한 냄새, 누군가에겐 향수이기도 할 냄새…. 오래 맡아서 익숙한 그 냄새는 생태가 황태로 숙성되어 가며 발산하는 인고의 향기였다. 이곳을 반추하면 줄줄이 매달린 명태보다도 냄새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말린 명태 대가리를 한 포 샀다. 대가리라 칭하기가 미안하다. 명태 머리 하나 우리면 떡국에, 찌개에 두루 시원한 맛을 낸다. 러시아에서 먼 용대리까지 와서 생을 소멸하는 명태. 얼고 녹느라 서너 달 여윈잠 설치고 황태로 거듭나는 명태. 이제 황태포를 보면 귀히 예우하겠다. 지금쯤 그곳 명태는 남은 수도 기간 해탈의 경지에 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