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일을 하면서는, 기자와 가장 닮은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일단, 변호사는 타인에게 온갖 사실을 꼼꼼하게 캐묻는 일을 잘해야 한다. 소송에서는 정확한 사실관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물어서 파악해놓지 않으면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 기자처럼 의뢰인을 취재하듯이 전후 사정과 세부 맥락 등을 모두 다 파악해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소송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실들이 계속 등장한다. 의뢰인도 잊어버렸거나 부끄러워 차마 못 했던 이야기들이 상대편의 입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대체로 그렇게 못 들었던 사실들이야말로 중요할 때가 많다. 그러니 취재를 넘어서 취조하듯이 사건과 관련된 사실들을 매우 꼼꼼하게 파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법정까지 왔다는 것은 당사자들이 보통의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앙숙처럼 미워하는 경우도 많고, 서로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리한 이야기는 거의 다 폭로된다. 특히 이혼 소송이거나 동업자의 분쟁 같은 경우는 서로 가까웠던 만큼 서로에 대한 사사건건의 폭로전으로 얼굴을 붉히게 되기도 한다.

타인이나 회사 등의 이야기를 깊게 알게 되는 기자처럼, 변호사도 그렇게 어느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게 들을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떻게 보면 차마 사람들이 다른 데 밝힐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는 심리상담사 같기도 하다. 그만큼 타인의 비밀을 지켜주는 일도 중요하다.

다른 한 편으로 변호사가 기자와 닮은 점은 세상 곳곳의 온갖 영역의 일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변호사가 아니라면 자기 업무가 아닌 한 스마트폰 부품 제조 및 유통 구조, 업체 간 갑을관계, 코인이나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된 IP 문제, 다단계 사기의 내부 구조와 계좌 흐름 같은 것을 그렇게 자세히 알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는 온 세상의 온갖 일에 개입하는 법을 다루어야 하다 보니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다 듣게 된다.

나는 작가로 살던 서른 무렵 기자나 변호사 둘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이십대 내내 인문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면서 학문의 세계에 있는 동안 왠지 이 세상의 구체적인 현실과는 유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나는 관념의 세계에서 벗어나 바로 현실로 뛰어들어 그 현실을 하나하나 경험하고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상 변호사가 되어 보니 정말 매일매일이 현실 그 자체다.

변호사가 되니 평생 가본 적 없는 구치소나 경찰서 정도는 동네 슈퍼마켓처럼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나는 숫자 계산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변호사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꼼꼼하게 주고받은 돈 액수를 1원 단원까지 계산하여 따지는 것이다. 차마 인문학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세부적인 현실의 폭력들이 눈앞에 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짜맞추고 대응하고 파헤치고 싸워야 하는 게 변호사의 일인 것이다.

사실 그 이전까지 작가로만 살 때는 타인에 대해 ‘꼼꼼하게 따지는 것’ 자체가 다소 꺼려지는 면이 있었다. 하다못해 임대차 계약 같은 것을 할 때도 계약 조항보다는 집주인 ‘기분’이 더 중요한 것처럼 눈치보곤 했다. 그런데 이 현실 세계에 들어와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지는 것이 그다지 어색하지 않게 되어가기도 한다. 조선시대로 치면 선비처럼 돌려 말하고 그러려니 하기보다는 상인처럼 주판 두들기며 계산하고 따지는 쪽이 더 익숙해져야 하는, 그런 직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나의 두 직업이 된 작가와 변호사는 삶에서 모두 필요한 측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때론 이 삶을 관조하듯 바라보며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때론 이 현실에 뛰어들어 맞서 싸울 것은 맞서 싸우면서, 꼼꼼하게 따지며 살아야 하기도 한다. 둘 중 어느 쪽도 완전히 잃어서는 안 되고, 어느 쪽으로만 지나치게 매몰되어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낮에는 현실을 파헤치는 변호사로, 밤에는 하루를 돌아보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삶이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모와 도를 모두 가져가야 하는 이중주 같은 것이라는 점을 배워가는 셈이다. 그렇게 삶이란 늘 배우는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