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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너무나 완벽한 음식 식해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   입력 : 2023-01-29 19:58:17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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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 앞서, 반찬으로 먹는 ‘식해(食醢)’와 음료로 마시는 ‘식혜(食醯)’를 구분해 보자. 식해와 식혜는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를 가진 음식이다. 다만, 식해의 해(醢)는 젓갈을 의미하고 식혜의 혜(醯)는 초를 의미한다. 즉 식해는 곡물과 생선을 함께 넣어서 삭힌 음식이고 식혜는 생선을 빼고 곡물로만 삭힌 음식이다. 그래서 바다(海)를 떠올리면 된다. 바다에서 나는 것이 들어가면 ‘식해’, 바다에서 나는 것이 들어가지 않으면 ‘식혜’가 된다.

8개월 동안 삭힌 가자미 식해.
양식업이 발달하기 전까지 바다에서 나는 것은 오로지 바다가 허락하는 만큼 얻을 수밖에 없었다. 계절과 해류에 따라 잡힐 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히지만 없을 때는 야속할 정도로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많이 잡힐 때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저장법을 고안해야 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말리는 것(건조)이고 다음이 소금에 절이는 것(염장)이다.

한반도의 바다를 동과 서 둘로 나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건조는 동과 서 양쪽 모두 발달했다. 문제는 염장. 소금이라는 물질은 참 오묘하다. 인간 생존에 꼭 필요한데 오로지 바다에서만 얻을 수 있다. 바닷물이 아주 짜게 느껴지지만 사실 염도는 3~4%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소금을 얻기 위해서는 96%의 수분을 증발시켜야 한다. 햇볕을 받는 면적을 최대로 넓혀서 증발(천일염) 시키거나 바닷물을 끓여서 증발(자염)시켜야 했다. 서쪽 바다는 천일염과 자염 모두 생산하기 상대적으로 쉬웠다. 소금이 풍부했고 염장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결과물이 젓갈이다. 100㎏의 새우젓을 얻기 위해서는 무려 20㎏의 소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해의 사정은 달랐다. 바닷물은 풍부한데 천일염이나 자염을 대량 생산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따라서 서해보다 소금이 적고 귀했다. 서해처럼 소금을 풍족하게 쓸 형편이 아니었다.

소금을 적게 쓰면서 생선을 오래 두고 먹을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소금의 사용은 최소화하는 대신 곡물을 활용했다. 조 쌀 찹쌀 보리 등의 곡물과 엿기름을 소금 대신 넣어 생선과 함께 삭혔다. 엿기름은 기름(oil)이 아니다. 엿기름의 ‘기름’은 ‘기르다’의 명사형이다. 보리를 발아시키면 탄수화물을 당으로 바꾸는 효소가 엄청나게 생성된다. ‘당을 만드는 곡물’이라는 뜻에서 엿기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엿기름을 영어로 하면 몰트(malt)다. 곡물로 지은 밥과 엿기름을 섞어 생선을 삭히면 엿기름은 곡물이 가진 탄수화물을 당으로 바꾼다. 이 과정에서 유산이 생성되고 생선의 부패를 방지한다. 최소한의 소금은 생선의 단백질을 분해해 감칠맛을 증폭시킨다. 거기에 고춧가루가 더해지니 매운맛까지 가세한다.

소금 곡물 엿기름 고춧가루를 함께 넣어 삭힌 식해에는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 감칠맛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러니 밥도둑이 될 수밖에 없다. 정말 완벽한 구조를 가진 삭힌 음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젓갈보다 손은 더 많이 가지만 젓갈과는 차원이 다른 음식이 되었다.

우리 조상님들은 먹는 것에 정말 진심이었다. 환경이 열악할수록 욕망은 강렬해지고 지혜는 더욱 쥐어짰다. 만약 동해가 서해만큼 소금이 풍족했으면 식해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식해를 먹을 때마다, 핸디캡은 절망의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도전을 부르는 조건이라 믿는다. 음식을 탐구하는 일이 직업인 나는 늘 음식에서 인생을 배우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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