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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연극배우 박찬영 50년 무대인생의 무게

한 길 걸은 예술가 반세기, 쉽지 않은 작업 높이 살 만

미래세대 꾸린 기념 공연, 함께 출연 현역 열정 과시…문화계 ‘소중한 유산’ 평가

  • 강춘진 기자 choonjin@kookje.co.kr
  •  |   입력 : 2022-11-28 20:01:2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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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박찬영의 무대인생 50년 기념 공연은 울림이 있었다. 감동의 무게도 묵직했다. 인간이 한 분야에서 50년을 보낸다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른바 ‘100세 시대’에도 짧지 않은 시간이다. 한편으론 그 긴 세월 오직 하나만 보고 달려온 순간순간이 고단하고 지겹기도 했겠다. 인생 2모작, 3모작을 입에 올리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세상이 아닌가.

극단 ‘바다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해운대문화회관에서 공연한 ‘나는 미치지 않았다’는 박찬영의 연기인생에 초점을 맞췄다. 한 배우의 반 세기 무대 활동 성과와 가치를 문화계 미래 주역들이 작품으로 엮어냈다는 것이 이채롭다. 당사자가 주인공으로 출연해 무대를 이끈 부분 또한 눈길을 끌었다. 연출력이나 극본 완성도 등 작품성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따질 계제가 아니다. 그것은 평론계 몫이다.

학계에서는 퇴직을 앞둔 교수를 위해 은퇴 기념 논문집이나 책을 동료교수나 제자들이 엮어 헌정한다. 해당 학자는 대개 회한이 남는 기념식이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세월에 밀려 훈장처럼 단 ‘명예교수’ 타이틀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현역에서 벗어나는 홀가분함보다 아쉬움이 더 크게 와 닿기 때문이다. 박찬영의 연극인생 50년 기념 ‘헌정 무대’는 결이 다르다. 계속 현역인 그에게는 작품 하나 더 보탰다는 의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예술세계 종사자들이 누리는 ‘축복’일 수 있다. 건강과 열정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역할을 주는 무대가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연극 ‘나는 미치지 않았다’ 구도는 단순하다.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내는 한 연극배우가 병실을 같이 쓰는 환자들과 다양한 작품 세계를 풀어낸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시작으로 ‘돈키호테’, ‘노인과 바다’, ‘리어왕’,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그리고 ‘파우스트’ 등이 극중 옴니버스 형태로 등장한다. 1998년 2월부터 부산시립극단 창단 멤버로 활동한 박찬영이 그동안 출연한 고전 연극작품들이다. 세태 변화와 연출 의도에 따라 상황 설정 및 해석이 달라졌다. 그가 펼쳐보인 인간군상은 다채로웠다.

작품에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노배우의 두 딸(박찬영도 실제 두 딸이 있음)이 병원을 찾아 아버지의 과거를 원망하는 장면은 마음이 아렸다. 두 딸은 자신들을 돌보지 않고 연극에만 몰두했던 아버지에게 한없이 불만을 쏟아낸다. 더는 찾지 않고 병원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할 날만 기다리겠다는 두 딸의 퇴장 뒤 노배우는 독백한다. “먹고 살기 위해 연극을 했다.” 결국 두 딸과 화해하는 노배우는 커튼 콜에서 “나는 연극배우다”고 외친다. 나머지 9명의 출연진도 개성 있는 멘트를 곁들여 “나는 연극배우다”로 마무리 인사를 한다. 그렇게 연극은 끝났다.

박찬영은 1972년 동아대 경제학과에 입학하자마자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갔다. 그는 신입생 환영 공연 작품 ‘연기된 재판’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무대인생을 ‘화려하게’ 시작했다. 새내기 단원이 갑자기 펑크 난 주인공 자리를 꿰찬 것이다. 1973년에는 극단 ‘현장’ 창단 멤버로 부산 연극 발전의 씨앗을 뿌렸다. 부모의 극심한 반대로 몰래 무대에 섰던 그는 음악 다방 디스크자키(DJ)로 활약하면서 용돈벌이를 하는 등 나름대로 낭만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20세기 말 지역 극단에서 유행처럼 일었던 서울 대학로 소극장 무대와 영화·방송계 진출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부산 연극판을 굳건히 지켰다. 21세기 들어서는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해 중후한 목소리의 판사, 의사 역할을 하거나 경상도 특유의 거칠고 순박한 사람 역을 맡는 등 영상무대 ‘국민 단역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이는 ‘먹고 살기 위한 변신’이다. 타고난 그의 예인 기질은 연극무대에서 더욱 빛이 난다.

박찬영은 혈기왕성한 시절 입버릇처럼 “환갑잔치를 무대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환갑을 챙기는 세상이 아니라서 그 희망은 실현되지 못했는지 모른다. 대신 몇 년 전부터 후배들이 그의 ‘칠순잔치’를 준비하다 이번에 기념 무대가 이뤄졌다. 내년이 칠순인 박찬영의 50년 무대인생에 더 큰 가치를 뒀던 셈이다. 박찬영은 극단 ‘따뜻한사람’이 다음 달 15~16일 6번출구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아빠(가제)’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연극배우인 ‘아빠’가 두 딸과 아내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다가 갑자기 쓰러져 일어나는 갈등과 연민 등을 그렸다. 그의 무대인생 50년 기념 공연 시즌2 작품이다.

대한민국 연극사에 새겨질 작품 하나는 남기겠다는 열정이 남다른 박찬영은 현역 활동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무대인생만 한 세기 절반을 넘어선 배우가 미래 세대와 함께 땀 흘리고 호흡하는 자체가 소중한 ‘문화 유산’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의 ‘팔순잔치’가 기대된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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