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시절 대학을 다녔던 직장 선배가 군대 제대 후 어느 날 술자리 시비에 휘말려 경찰서 신세를 지게 됐다. 그런데 웬일인지 담당 형사는 별다른 조사를 않고 “앞으론 그러지 말라”며 그를 훈방 조치했다. 며칠 후 정보과 형사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점심을 한 끼 사주면서 “혹시 학교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좀 알려줄 수 있겠나”고 했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던 시절 정보 형사는 이런 방식으로 대학생들의 동향을 살피곤 했던 것이다. 선배는 제안을 한마디로 거절했는데 몇년 뒤 기자와 출입처 형사로 다시 만나 옛일을 떠올렸다고 한다.
13만 경찰 중에서 정보 경찰은 3000여 명쯤 된다. 국정원이나 검찰 군대에도 정보 수집 기능이 있으나 모세혈관 같은 조직의 방대함으론 경찰을 못 따른다. 정보 경찰은 시·군·구 읍·면·동 단위로 출입처를 정해 사람을 만나고 첩보를 수집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아는 만큼 때론 정보원과의 유착이, 때론 과도한 사건 개입이 병폐로 지적된다. 세월호 참사처럼 민감한 이슈가 터지면 이들의 활동이 민간인 사찰 논란으로 번지는 이유다. 검찰 힘을 빼려고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밀어붙였던 문재인 정권마저 공룡 경찰을 우려하며 가장 먼저 손대려 했던 분야가 정보 경찰이었다. 정보 경찰이 수집한 정보는 상대를 벨 수도, 자신이 베일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예상한 정보보고서 삭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서울 용산경찰서 정보계장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졌다. 사고 사흘 전 담당 정보관이 안전사고를 우려한 보고서를 올렸는데, 참사 발생 직후 이를 서버에서 지우도록 지시했다는 의심을 받는 간부 중 한 사람이다. 사건 당일 경찰이 112 신고를 수차례 접수하고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아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경찰이 사전에 예상까지 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후폭풍을 감당 못한다는 두려움이 너무 컸을까.
핼러윈 행사를 수년째 지켜봐 온 정보 경찰이라면 인파에 의한 사고 위험 보고서를 매년 써왔을 것이다. 책임자 입장에선 이를 ‘때만 되면 나오는 정보’쯤으로 치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위험성 간과와 보고서 폐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판단의 안이함은 비판의 대상일 뿐이지만 공문서 파기는 증거 인멸이라는 범죄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경찰 수뇌부에 대한 분노와는 별개로, 대형 사건사고가 터지면 희생양부터 찾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낳았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