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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나의 영원한 외사랑, 신춘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1-13 20:00:2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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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다. 다시 마음이 바빠진다. 어쩔 수 없는 오래된 습관이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을 공모에 맞춰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운 좋게 등단해 공모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지만, 여전히 11월만 되면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시간만 보낸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등단을 꿈꾸던 시절, 나에게 12월은 마지막 남은 기회이며 새해를 멋지게 장식할 희망이었다.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 공모가 몰려 있는 달이 12월이었다.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나에게 11월과 12월은 집중과 산만, 충만과 결핍이라는 이중적 감정이 시간 단위로, 분 단위로 뒤섞이고 바뀌는 순간을 맛보게 했다. 밤을 새워 쓴 글을 아침에 일어나 모두 지워버리고 막막하게 앉아 있던 때도 많았다. 분명 어젯밤 나의 글은 보석같이 빛났는데 아침에 일어나 읽은 글은 어젯밤에 썼던 글이 아닌 듯 모두 휴지통에 버려야 하는 문장뿐이었다. 어젯밤 부둥켜안고 애끓으며 사랑했지만, 아침이 되면 절망만 남았다. 쓰고 다시 지우고, 지우고 다시 쓰며 11월을 보내면 신춘문예의 계절이라는 12월이 와 있었다.

나는 공모전 장수생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과 특성상 공모전 준비는 생활화돼 있었다. 재학 때에도, 졸업하고 나서도 해마다 등단 작가를 배출됐다. 문예지로 등단하는 친구도 있었고, 신춘문예로 등단하는 친구와 후배도 있었다. 등단하지 못해도 본심과 최종심에 오르는 친구도 많았다. 내가 그중에 속했다. 꾸준히 오르고, 꾸준히 떨어지는 일을 매해 반복하고 있었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썼던 해에 모든 메이저 문예지 최종심에 오르고 죄다 떨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 낙선 소식을 전하자 웃으며 말했다. “우리 과에서 누나가 가장 많이 오르고 가장 많이 떨어졌을 거야. 최고다”고.

그해에도 친구와 후배가 등단했다. 모두 지독하게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인이었다. 어두운 방, 책상 앞에 앉아 십 년이 넘는 세월을 글 하나만을 바라보고 묵묵히 버텨온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등단 소식이 기쁘기도 했지만 씁쓸하고 헛헛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열망하던 사랑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너무 많은 문학인이 열망하는데 단 한 명만을 뽑는 게 가혹하다고 생각됐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낮은 당선 소식을 기다리는 게 힘들다 못해 피가 말랐다. 언제쯤 지독한 외사랑이 끝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0년을 글을 쓰지 않았다.

쓰지 않으면 잘 살 줄 알았다. 문학 따위는 잊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문학 언저리를 맴돌았다.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공모전 계절이 되면, 신춘문예 계절이 되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기웃거렸다. 예전에 썼던 글을 꺼내놓고 만지작거렸다. 심사위원을 잘못 만났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어. 다시 보내면 당선될 수도 있어. 자위했다. 꼴사나운 짓인 걸 알았지만 공모철이 되면 미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글을 다시 쓰리라 결심했다. 결심은 했지만 다시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3년을 그냥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한 줄 쓰는 일이 이토록 힘들 줄 몰랐다.

그래도 매일 책상 앞에 앉았다. 글은 호흡이 있고, 리듬이 있고, 흐름이 있었다. 써질 때도 있고, 한 줄도 쓰지 못할 때도 있지만 책상 앞에 앉지 않으면 쓰는 습관이 무너진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버텼다. 버텨온 시간 끝에 등단했다.

신춘문예에 공모하는 문학인 절반은 장수생일 것이다. 당선작이 첫 작품일 확률은 별똥별이 우리 집에 떨어질 확률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신춘문예 장수생을 응원한다. 나는 당신이 견딘 시간을 알고 있다. 나는 고독한 당신에게, 당신이 보낸 고독한 시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오랜 습작 기간을 보내며 스스로 고독하게 만들었던 시간을. 이 모든 시간을 견디며 쓴 내 글이 빛을 보는 날이 바로 여기. 앞에 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시라. 당신이 사랑하고 열망하는 신춘이, 당신의 손을 꼭 잡아줄 것이다.

김은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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