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감성터치] 펼친 손가락으로 말할 수 있는 것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0-30 19:55:53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필자의 아이는 십이월 생으로, 나자마자 한 살이, 보름 만에 두 살이 되었다.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지만, 부모는 그 친구의 의사와 별개로 부과된 초고속 승진을 떠올리며 무엇이든 늦될까 조바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막 다섯 살 문턱을 넘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씽씽카를 타던 아이가 넘어지고 말았다. 얼른 보아선 멀쩡해 보였지만, 빼 울음이 터졌다. 나는 아이 옷을 털면서 아내의 추궁을 덜컥 걱정했다.

집으로 가자는 아이를 슈퍼로 앞세워 영양가도 없는 뭣을 하나 쥐어주었다. “이제 안 아프지?” 단 걸 물렸으니 괜찮아졌어야 할 아이는 아비의 바람과 달리 다섯 손가락을 죄 펼치며 이만큼 아프다 했다. 아이가 셀 수 있는 가장 큰 수 앞에 마음이 내려앉았으나, 마지막 희망을 걸 듯 아이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하나, 두울… 이제 다섯 살이 되었으니…” 아이의 애먼 주먹만 한참 내려 볼 뿐, 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역시나 보라는 애는 안 보고 휴대폰에 시선을 뺏겼던 중죄에 관한 비난이 쏟아졌다. 나는 아내 뒤로 무한히 반복되는 벽지 격자무늬의 규칙성을 좇으며 그녀의 말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에겐 자기 손가락 개수만큼의 세계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일 것이다. 싱거운 잡념이 꼬리를 물었다. 만약 아이 대신 내가 넘어졌어도 손가락을 들어 보였을까. 말로 설명했으면 했지, 유치하게 숫자로 말했으려고. 아이는 저의 통증이 5라는 숫자와 대응한다 믿겠지만, 어른은 그 같은 강한 연결 대신 말이라는 느슨하게 연결된 표현을 선호한다. 이는 우리의 앎이 어차피 대상이 지닌 속성의 근사치일 뿐이란 걸 세월 속에서 인정하게 된 까닭이다. 주지의 사실대로, 말이야 개별 존재로부터 솎아낸 보편의 개념이다. 우리가 ‘새’를 “새”라고 부르기까진 뭇 새들을 통해 귀납적 공통을 묶는 과정이 필요하다. “새”라고 불리기 전의 ‘저 대상’으로부터 날개, 부리 같은 보편적 속성을 상정해놓고,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대상에게 “새” 또는 “Bird”라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귀납적 방법은 오류의 가능성을 품기에 언제까지나 참일 순 없다. 백 마리의 새에서 날개가 관찰되었으나, 백한 마리째 새에서 팔이 발견되었다면 새의 공통속성이라 믿었던 날개를 폐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수와 달리 말은 불완전한 매질일 수밖에 없는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어떤 대상 a를 설명하려는 불가능한 행위의 반복 속에서 태어난다.

아내는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어딜 보느냐며 을러댔다. 어른의 세계에선, 적어도 내게 수는 날짜나 돈을 셀 때나 동원될 뿐이다. 지금보다 어릴 적의 난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글쓰기로만 삶을 꾸린다면?’ 같은 상상을 자주 했다. 어떤 날에는 ‘삼십만 원이면 한 달쯤 살겠지?’ 생각하다 또 어느 날엔 ‘그래도 백만 원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대중없이 널뛰곤 했다. 현실감의 결여에서 오는 그 같은 공상이 어디까지 뻗든 그쯤 내게 가장 큰 수가 백만(원)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만(萬)이 억 단위로 넘어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출받아 얻은 아파트 값만 해도 ‘억’ 소리가 나오고, 백만이란 그 대출금을 매달 갚는 액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을 헤는 수의 증가가 곧 사고의 깊이라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수가 일정한 진실을 담아 현상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매질임은 분명하지만, 때로 수는 무심한 낯으로 우리와 마주하기에 수로 변환된 실제를 단박에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가 휩쓸었던 몇 해간, 지구촌은 연일 경신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목도해야 했다. 그 무덤덤한 숫자들을 보며 아파할 수 있는 역량이야말로 사고의 깊이, 사람의 깊이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아이에게 손가락 다섯 개는 숫자 ‘5’와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많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을까 의심이 든다. 백 천 만 억…, 그 이상의 개념까지 사유할 수 있다는 것과 무한을 감각하는 것 사이에는 대양이 흐른다.

암만 높고 깊은 사고를 지닌 어른인들 그 또한 유한자일뿐.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쥐길 반복하며 잡념을 이어나갔다.

정재운 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시, 백양·신백양터널(2031년 완공) 통합 운영
  2. 2“갑질 보건소장 전출 약속, 구청장 왜 안 지키나” 공무원노조 반발
  3. 3HD현대마린 상장 한달 만에 부산 시총 1위…금양 2위 밀려
  4. 4무법천지 캠퍼스 도로…과속 차량에 음주 킥보드 질주까지
  5. 5‘신산업 인력 양성소’ 부산형 대학원대학사업 급물살
  6. 6부산시의회 안성민 의장 연임
  7. 7의료대란 피했지만…의협 “27일부터 무기한 휴진”
  8. 8[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13년 만에 다시 작품으로 재회 ‘원더랜드’ 김태용·탕웨이 부부
  9. 9“임용도 안 된 게 여기 있냐” 학생이 기간제 교사에 막말(종합)
  10. 10MZ 호캉스 맛집 ‘블루헤이븐’
  1. 1부산시의회 안성민 의장 연임
  2. 2부산시 16조9623억 추경예산안 예결위 통과
  3. 3푸틴 방북한 날 韓中 안보대화…“북러 협력 논의” 견제구
  4. 4與 ‘최고령 초선’ 김대식, 초선 같지 않은 광폭행보
  5. 5시의회는 안정 택했다…안 의장 “반대파·野와 소통할 것”
  6. 6野 일사천리 법안 강행…與 헌재 심판 청구 맞불
  7. 7北, DMZ 수백m 대전차 방벽 구축 확인…지뢰매설 중 사고로 다수 사상자 발생도
  8. 8[단독] 한동훈, 23일 당 대표 출마 선언 계획
  9. 9부산시의회 의장단 18일 선출…막판까지 치열한 득표전
  10. 10우원식, 상임위 野 11 與 7 권고에도…법사위 쟁탈전에 파행
  1. 1HD현대마린 상장 한달 만에 부산 시총 1위…금양 2위 밀려
  2. 2MZ 호캉스 맛집 ‘블루헤이븐’
  3. 3르노코리아 ‘외투 보조금’ 이달 중 윤곽
  4. 4가슴으로 낳은 우리 댕냥이…펫보험 들까, 펫적금 넣을까
  5. 5부산 ‘초격차 스타트업’ 6곳, 향후 3년 최대 11억씩 혜택
  6. 6부산銀 부산 점포 174개…어르신 금융복지 차원 일부 적자 영업점 유지
  7. 7[지금부터 은퇴금융]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가입으로 비과세·분리과세 양손에 쥐어보자
  8. 8주가지수- 2024년 6월 18일
  9. 9부산형 워케이션 인기몰이…글로벌 참가자도 “방 있나요?”
  10. 10분산에너지법 전기료 호재 “부산 데이터센터 유치 속도내야”
  1. 1부산시, 백양·신백양터널(2031년 완공) 통합 운영
  2. 2“갑질 보건소장 전출 약속, 구청장 왜 안 지키나” 공무원노조 반발
  3. 3무법천지 캠퍼스 도로…과속 차량에 음주 킥보드 질주까지
  4. 4‘신산업 인력 양성소’ 부산형 대학원대학사업 급물살
  5. 5의료대란 피했지만…의협 “27일부터 무기한 휴진”
  6. 6“임용도 안 된 게 여기 있냐” 학생이 기간제 교사에 막말(종합)
  7. 7여전히 위험한 부산 스쿨존…주차장 방치되고 펜스는 허술
  8. 8실제 휴진 병원, 신고한 것보다 3배 많아…일부 환자 불편도
  9. 9시의회 “예산대비 실익 적다” 동의안 부결…市 “교육과정·입지 등 지적사항 보강할 것”
  10. 1010대·20대 마약사범 올해만 전체 중 40%…5년새 5000명 늘어
  1. 1부산 아이파크 홈구장 구덕운동장 이전
  2. 2소년체전 부산 유일 2관왕…올림픽·세계선수권 도전
  3. 3보스턴 16년 만에 우승, NBA 새 역사 썼다
  4. 4당구여제 김가영 LPBA 64강 탈락 이변
  5. 52골 취소 벨기에, 슬로바키아에 덜미
  6. 6롯데 ‘5연속 위닝’ 아쉽지만…하위권 상대 치고 오른다
  7. 7'롯데 선발진의 희망' 김진욱이 말하는 ABS와 제구력[부산야구실록]
  8. 8김주형·안병훈 파리올림픽 출전
  9. 9안나린 공동 5위…한국선수 15번째 무승 행진
  10. 10부산 전국종별육상서 금 4개 선전
우리은행
후보가 후보에게 묻는다
부산 서동
4·10 총선 지역 핫이슈
원도심 숙원 고도제한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노동자 건강을 위한 국제사회의 경향
소규모사업장 중처법, 투약 중단이 필요한가?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 많이 두들겨 보아야 할 산복도로라는 돌다리
옛 부산세관 복원, 진정한 새로운 전통이 되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연대(連帶)의 중요성과 과학자의 역할
준설, 유일한 치수대책은 아니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3요’와 칸 레드카펫을 빛낸 조연들
AI시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기고 [전체보기]
갑진년 김해시의 ‘값진 주민과의 대화’
부울경 메가시티가 먼저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에 대한 열렬한 환호와 예우…‘축제의 궁전’ 품격이 달랐다
영화의전당 대표 연임…소통 외치는 현장에 귀 기울여야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노무현이 옳았다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신문은 살아 있고, 칼럼은 말을 건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공존과 양립으로서의 국악 컬래버
디아스포라의 노래 영천아리랑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천덕꾸러기’ 북항재개발 이대로는 안된다
소통을 이기는 무기는 없다
데스크시각 [전체보기]
가덕신공항과 박형준의 정치적 미래
도청도설 [전체보기]
2030 엑스포 후폭풍
7급 유튜버 공무원
메디칼럼 [전체보기]
일하는 사람의 1차 의료, 근로자 건강진단
100세시대의 건강관리법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대만과 밀크피시
조식전쟁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腦力)을 키우는 다섯 가지 비결
뇌, 팩트 체크!
사설 [전체보기]
‘부산어린이병원’ 만반의 준비로 2027년 개원 지켜야
평양서 김정은 만나는 푸틴, 북러 밀착 면밀한 대응을
세상읽기 [전체보기]
포위된 정치, 제22대 국회에 대한 기대
‘고립주의’ 미국, 돌아온 ‘정글’…한반도 해법은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건강주치의 제도가 의료 개혁의 핵심인 이유
의대 입학정원 갈등의 올바른 해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회의 바다, 우리네 함장은 어디로 키를 잡을까
부산항, 글로벌 물류 허브 플러스 알파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12월의 기도편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경제문제가 풀려야 인구문제가 풀린다
중국의 한국시장 시장교란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인문 정신은 언제나 곡선으로 간다
호모 사피엔스의 바다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나만의 생각’을 길러주려면
한국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IB교육학회 창립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당원 중심주의’의 함정
비례대표 제도는 죄가 없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오페라 와인
와인이란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바로크 음악
낭만오페라의 종언! 푸치니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꽃피는 부산항’에서
처음 보는 ‘무릉도원’
CEO 칼럼 [전체보기]
가덕도신공항 경제권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
  • 유콘서트
  • 국제크루즈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