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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BTS와 아미 ‘평화의 사도’에 임명하자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0-24 19:36:21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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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6·25전쟁은 ‘6·25동란’ 혹은 ‘6·25사변’으로 불렸다. 동란(動亂)이나 사변(事變) 모두 전쟁을 함의하지만 전쟁과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그냥 알기 쉽게 ‘전쟁’이라 부르면 될 일을 말이다.

‘한국전쟁(Korean War)’은 6·25전쟁의 영어식 표현이다. 외국에서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고도 부른다. 이 단어는 전쟁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던 1951년 10월, 미국의 시사 주간지인 ‘US NEWS AND WORLD REPORT’의 어느 칼럼 기사에 등장하면서 유행어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주간지의 칼럼 제목 하나가 전쟁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한국전쟁은 망각의 길로 접어들었다.

우리처럼 외국에서도 한동안 한국전쟁을 전쟁으로 부르지 않았다는 불편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자국의 젊은 피를 뿌려가며 우리를 도왔던 유엔 동맹국조차 한국전쟁을 ‘한국 분쟁(Korean Action)’ ‘유엔 작전(United Nations Operation)’처럼 애매하게 표현하며, 전쟁으로 규정하는 데 주저했다. 미국과 소련으로 양분된 냉전 시대에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게 반외교적이라 여겼을 수도 있다.

전쟁이 전쟁 대접을 받지 못함에 따라 가장 큰 고통은 생존한 참전용사들이 받아야 했다. 살아 고향으로 돌아갔으니 전사자에 비해 행운아로 여겨졌을 터. 동화책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으련만 실상은 그러지 못한 듯하다.

한국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참전용사 중 30%가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삶이 파괴되었다는 기록을 읽은 기억이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음의 상처는 소통과 공감으로 이겨낼 수 있음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치유의 기회가 정작 자신들을 전쟁터로 내몬 조국으로부터 외면당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영국군 참전용사이자 부산 남구 명예구민인 제임스 그룬디 씨가 얼마 전 92세 일기로 별세했다. 1988년 국가보훈처 재방한 프로그램으로 한국 땅을 밟은 이후, 30여 년 한 해도 빠트리지 않고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전우의 묘역을 돌본 분이다. 그랬던 그도 오랫동안 자신이 한국전 참전용사라는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참전용사로서 공감도 존중도 받지 못해서였다.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난 레스 피트 캐나다재향군인회장은 캐나다 정부와의 길고 긴 싸움 끝에 한국전쟁을 ‘전쟁’으로 인정받게 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18개월 한국전 최전방에서 복무하는 등 20년 이상 직업군인으로 생활한 그가 울분에 겨워 쓴 한국전쟁 관련 책의 제목은 ‘전쟁이 아닌 전쟁(The War That Wasn’t)’이다.

필자가 사는 부산 남구에는 유엔군 참전용사들이 영면한 유엔기념공원이 있다. 이곳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주 묘역 아래 원형 분수를 빙 두른 전몰용사추모명비 앞에 서 볼 것을 권유해 드린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사라져간 18개국 젊은 군인 4만896명의 이름이 검은 오석 위에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명단이다. 그 가운데 11개국 2315명이 공원에 잠들어 있다. 공원 홈페이지에는 유족이 남긴 추모의 메시지가 넘쳐난다. 한국전쟁과 참전용사들이 결코 잊힐 수 없음을 보여준다.

K팝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방탄소년단 (BTS)의 부산 공연이 얼마 전에 있었다. BTS와 ‘보랏빛 군대(Army)’의 힘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BTS 멤버들이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자유는 공짜가 아님(Freedom is not free)’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참에 BTS와 팬클럽 아미를 한국전쟁과 유엔기념공원을 알리는 ‘평화의 사도’로 활용하면 어떨까 싶다. BTS 멤버가 유엔기념공원을 둘러보고 참배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전쟁은 망각의 강에서 깨어나고, ‘은혜를 잊지 않는 나라’를 알리며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도 기여할 것이다.

유엔기념공원을 전쟁의 유산이 아니라 평화의 씨앗으로 활용할 때다. 전쟁을 기억하기보다 은혜를 잊지 말자는 의미다. 은혜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는 법이다.

오은택 부산 남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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