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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가을, 문학기행을 떠나다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0-23 19:08:13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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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걷기에 참 좋다. 꽃 바람 하늘 길 위의 모든 것들이 기꺼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게다가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다 아름답게 보이는 마음이 열리는 계절이다. 이 가을, 무작정 혼자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것도 괜찮다. 더욱이 소설 작품 속 배경이 된 장소를 걷는 문학기행은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요산 김정한 문학축전의 일환으로 문학기행을 따라 나섰다.

호포역에서 출발해 모랫등으로 가는 길은 자전거 도로라 부득이 한 줄로 이동을 해야 했다.굳은 마음가짐, 씩씩한 발걸음과 달리 웬걸, 예고도 없이 훅 달려오는 자전거와 부는 바람에 순식간에 몸이 휘청거렸다. 모랫등은 ‘산서동 뒷이야기’의 배경이 된 곳으로 박노인이 살던, 철둑 너머 개펄마을이라고 했다. ‘들마을’ ‘오리숲’ 조그만 부락들이 넉넉잡아 3년에 한 번씩 물난리를 겪는 위험지대였고 갑술년 여름 큰물로 둑 너머 개펄 집들이 모조리 휩쓸려가 산서동이란 데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지금은 당산나무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양산물금이라는 이 지역이 물이 그만 넘치기를 바라는 민중의 소망을 담아(물을 금하다) 불러졌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처음 알았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농민의 무너져 내리는 마음, 삶 전체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던, 참절(더할 나위 없이 비참하다는 뜻)함에 비하면 나의 휘청거림은 아주 가벼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낙동강의 또 다른 이름인 황산강, 그 이름에서 따온 황산공원에 도착했다. ‘산서동 뒷이야기’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낭랑하다. ‘장막을 걷어라/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 보자/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더 느껴보자/정자에 앉아 기타 선율에 맞춰 행복의 나라로’를 떼창 했다. 태양이 비치고 하늘과 바람 안에 있으니 또다시 걸을 힘이 생겼다. 목을 축이고 예전 제방이었고 밭두렁 길이었던 길을 따라 걸으니 물금나루터다. 물금나루터 역시 한 집안의 종부로 시집온 가야부인의 삶을 이야기한 ‘수라도’의 배경이 된 곳이다. 칼바람 뚫고 시집으로 가는 길, 가야부인의 삶이 평탄치 않은, 고단한 삶이 되리라는 걸 상징하는 장소라고도 했다. 수라도가 아수라도와 같은 말이며, 늘 투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를 지칭한다고 하니, 가야부인이 살았던 시절도 수난의 시대였으리라 짐작이 간다.

가람사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굴다리를 지나서 용화사로 갔다. 마치 미륵의 세계로 가는 듯한 묘한 느낌을 주는 컴컴한 굴다리라고 표현한 것처럼, 현세와 피안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야부인이 황산장에서 제사장을 보고 오던 중 바람을 피해 들어선 자리에서 한쪽 귀퉁머리가 이지러진 돌부처를 발견해 미륵암을 세워 돌부처를 모셨는데 미륵암이 용화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용화사 앞에서 모르는 사람, 아는 사람 함께 사진을 찍었다. 돌부처인 석조여래좌상 앞에서 잠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느라, 어느새 일행과는 멀어졌다. 뒤처진 걸음을 재촉하며 물금역 관사로 향했다. 수세식 변소며 책상 살림살이들이 예스러움을 간직한 채 보존되어 있었다. 노부부가 관사를 카페로 만들려다 우리처럼 찾아오는 이들이나 학생들을 위해 그대로 놔두기로 했단다.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금역 관사를 뒤로하고 마지막 장소인 옛 물금 면사무소로 왔다. 지금은 황산벌 국숫집으로 그 모습이 바뀌었다.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비로소 여정이 끝이 났다. 선생님의 삶과 정신, 작품의 향기를 느끼며 3, 4시간에 걸쳐 가을을 걸었다. 선생님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정신과 낮고 작은 것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 분이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작품마다 민중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차마 묵묵할 수 없는’ 세상에서 너무도 묵묵히 살고 있다. 불의에 타협하며 적당하게 무관심하게 눙치며. 눈 감고 귀 닫은 나를 종종 발견할 때면 나 스스로 놀란다. ‘사람답게 살아가라’ 당연하고도 근본적인 도리조차 잊고 살았던 모양이다. 문학기행을 통해 선생님의 깊은 울림의 향기를 마음속에 담아본다.

장미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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