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열심히 일한 당신, 쉼이 필요하다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0-11 19:23:59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985년 대학 졸업 후 바로 KBS 아나운서로 입사해 38년 방송을 했다. 지난달까지 휴일 당직에는 밤 9시 TV 뉴스도 했다. 10여 분 편성된 지역뉴스지만 아무리 짧은 뉴스라도 3시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스스로 분장을 해야 하니 머리를 고데기로 말고 속눈썹을 붙이고 옷을 맞추고 예독을 하고…. 뉴스가 끝난 뒤에는 진한 분장을 지우고 헤어스프레이를 잔뜩 뿌려 딱딱해진 머리카락을 뜨거운 물에 녹여내야 한다. 밤 10시 퇴근 후 회사 근처 목욕탕으로 직행. 이 일을 38년 한 거다.

365일 쉬지 않는 방송. 아나운서 근무는 방송 시간에 따라 조근 일근 석근 야근으로 나뉘는데 아침 TV 뉴스를 맡아 조근을 하게 되면 오전 5시 비몽사몽 출근해 분장실에서 혼자 꽃 단장을 한다. 게다가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할까 봐 자명종 시계 3개를 준비해 5분 간격으로 울리게하는데, 깜깜한 새벽 깜짝깜짝 놀라며 일어나는 일은 정말 고역이다. 그래서 1년 이상 조근을 하면 기력이 약해진다. 또 지역국에는 근무자가 적어 지각을 하면 대신해 줄 아나운서가 없으니 바로 방송사고다. 나도 조근 때 방송사고가 났는데 아마 잠결에 자명종을 껐나 보다. 몸이 기억해 눈을 뜨니 창밖은 환한데 눈앞은 캄캄. 앗! 어떡하지. 서울 뉴스로 대체되면서 부산 뉴스는 결방되고 난 견책이라는 징계를 받고 월급도 깎였다.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때는 그나마 나았다. 먹여주고 깨워주고 거의 모든 걸 부모님이 챙겨주셨으니까. 그러나 결혼과 함께 시작된 부산에서의 방송 생활. 부모도 친구도 멀리 떨어져 방송과 양육, 집안 살림은 정말 힘들었다. 오직 가사도우미의 도움으로 두 아이를 키워야 하는 환경. 아이가 자면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이가 일어나면 같이 놀아줘야 하고 출근할 때마다 엄마 옷을 붙잡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현관문을 닫을 때 내 눈에서도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새벽마다 깨는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열을 재고 병원으로 뛰어가고. 아이와 함께 눈물 콧물 흘리며 지내온 세월, 나도 엄마라는 걸 처음 해보는 거라 서툴렀고 일하는 엄마로 시행착오도 많았다. 할 수 없이 서울의 어머니가 둘째 아이를 돌까지 키워주셨는데 아무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아도 엄마 곁이 그리워서인지 잠이 들 때는 항상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1년 뒤 부산에 와서는 그 버릇이 사라졌으니….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짠~하다.

갑자기 도우미가 오지 않는 날에는 아이를 데리고 출근한 적도 있다. 스튜디오 밖에 아이를 앉혀놓고 방송에 들어가면 아이는 낯선 아저씨(엔지니어) 옆에서 불안에 떨고. 방송하랴 유리창 넘어 손짓발짓으로 달래랴 진땀을 뺐다.

두 아이가 중고등학교 갈 때쯤 되니 이번엔 부모님이 아프시기 시작했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투병하셨던 아버지, 자주 병원에 입원하셨던 어머니. 주중에는 전화로 체크하고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가 병원에서 자며 어머니를 돌봤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면 웃는 얼굴로 방송을 하고. 다행히 부모님은 가족의 정성 어린 간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익숙하고 편안한 당신 집에서 돌봄을 받으셨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안식년을 맞았다. 가끔 사표를 가슴에 품긴 했지만 그만두지 않고 버텼더니 내년에는 정년퇴직이라는 선물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이 어디 나 혼자뿐이랴. 아나운서든 선생님이든 간호사든 일하는 엄마들의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서울 본사에서는 정년퇴직하는 여자 아나운서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방송사를 통틀어 내가 정년을 맞는 최초의 여자 아나운서일 것이다.

겉으로는 우아하게, 그러나 물밑에서는 쉼 없이 물장구를 치며 살아온 삶. 그동안 애썼다 정말 수고 많았다. 그저 방송이 좋아 대학교 방송국에서도 아나운서를 했으니 마이크 앞에서만 산 세월이 40여 년. 이젠 아침마다 동동동동 뛰어다니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열심히 일한 당신, 쉼이 필요하다.

차경애 KBS 아나운서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압사 위험” 신고 빗발…어르신 몰린 벡스코 한때 초비상
  2. 2도시철 무임손실 급증…‘초고령 부산’도 노인연령 상향 촉각
  3. 3"영도서 한 달 살고, 최대 150만 원 받으세요"
  4. 4부산촬영소 상반기 착공? 경관심의 통과가 첫 단추
  5. 5부산 ‘탄소중립 어벤저스’ 한자리에
  6. 6밀려드는 관광·문화…주민도 만족할 ‘핫플 섬’ 만들자
  7. 7영도 상징 글씨체 개발, 세계 디자인상 휩쓸어
  8. 8“영도민 1명 줄면…연간 숙박객 9명, 당일 여행객 32명 유치해야”
  9. 9공공기관 이전에도…10년간 3만 명 엑소더스
  10. 10윤 대통령, 4월 BIE실사단 부산서 맞을까
  1. 1윤 대통령, 4월 BIE실사단 부산서 맞을까
  2. 2장외집회 연 민주, 또 나갈지는 고심
  3. 3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與 “책임 다할 것” 野 “대통령 왔어야”
  4. 4가덕~기장 잇는 부산형급행철도 시의회서 뭇매
  5. 5"안철수는 윤심 아니다""선거개입 중단" 대통령실-안철수 정면 충돌
  6. 6윤심 논란에 대통령실 개입까지 진흙탕 싸움된 與 3·8전대
  7. 7영국 참전용사들, 런던에서 '부산'을 외치다
  8. 8이태원참사 국회 추모제…여야 “진상규명 재발 방지 대책 마련”
  9. 9대통령실 신임 대변인에 이도운, 5개월 만에 공석 해소
  10. 10민주당, 6년만에 대규모 '장외투쟁'…국민의힘 "방탄 올인" 비판
  1. 1부산 ‘탄소중립 어벤저스’ 한자리에
  2. 2애플페이 내달 상륙…NFC 갖춘 매장부터
  3. 3“부산 녹색성장 적극 대응…‘대한민국 미래’로 거듭나야”
  4. 4“산은, 녹색기술 투자 견인…기보는 벤처투자 연계를”
  5. 5“온실가스 감축 비용 계속 증가…배출권 시장 효과적 관리 관건”
  6. 6“바이오가스로 그린 수소 생산…가장 현실적 방법”
  7. 7“전기차 부품 글로벌 경쟁 심화…정부 파격 지원을”
  8. 8해운경기 수렁…운임지수 1000선 위태
  9. 9“수소경제 핵심은 ‘연료전지’…지역 산·학·관 협업해야”
  10. 10“고양이도 개 못지않은 훌륭한 반려동물입니다”
  1. 1“압사 위험” 신고 빗발…어르신 몰린 벡스코 한때 초비상
  2. 2도시철 무임손실 급증…‘초고령 부산’도 노인연령 상향 촉각
  3. 3"영도서 한 달 살고, 최대 150만 원 받으세요"
  4. 4밀려드는 관광·문화…주민도 만족할 ‘핫플 섬’ 만들자
  5. 5영도 상징 글씨체 개발, 세계 디자인상 휩쓸어
  6. 6“영도민 1명 줄면…연간 숙박객 9명, 당일 여행객 32명 유치해야”
  7. 7공공기관 이전에도…10년간 3만 명 엑소더스
  8. 8버거운 난방비에…목욕탕 일찍 문닫고, 식당은 감원 고민
  9. 9“개금 주원초 학부모 70% 통·폐합 찬성한다”
  10. 10‘부산교육청 전교조 해직교사 특채’ 감사 이달 마무리
  1. 1롯데 괌으로 떠났는데…박세웅이 국내에 남은 이유는
  2. 2쇼트트랙 최민정, 올 시즌 월드컵 개인전 첫 ‘금메달’
  3. 3폼 오른 황소, 리버풀 잡고 부상에 발목
  4. 4황의조 FC서울 이적…도약 위한 숨 고르기
  5. 5MLB 시범경기 던지고 간다…오타니, WBC 대표팀 지각 합류
  6. 6국내엔 자리 없다…강리호 모든 구단과 계약 불발
  7. 7맨유 트로피 가뭄 탈출 기회…상대는 ‘사우디 파워’ 뉴캐슬
  8. 8WBC에 진심인 일본…빅리거 조기 합류 위해 보험금 불사
  9. 9‘셀틱에 녹아드는 중’ 오현규 홈 데뷔전
  10. 10한국 테니스팀, 2년 연속 국가대항전 16강 도전
우리은행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불신 큰 지방의회 권한 확대? 다수당 견제책 등 선결돼야
주민이 직접 설계하는 지방자치단체 구성
단체장 권한 집중 획일적 구조…행정전문관 등 대안 고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더불어 살며 지켜가야 할 피란수도 부산
55보급창은 반드시 공원이 되어야 한다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낙동강 녹조를 그대로 둘 것인가
표류하는 가덕신공항
기고 [전체보기]
수산자원, 잘 이용하고 관리해야
새 단계로 진입한 중국 방역
기자수첩 [전체보기]
학교 신축 공기지연, 노조 탓만 할 수 있나요?
김해시장, 소통행정 이후가 중요하다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한국은 여기까지다
안전하게 내려오는 방법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3차 세계화, 우리는 괜찮을까
‘죽어도 자이언츠’를 보면서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선인장 가시와 ‘나의 불안전 불감증’
민심, 그 숨은그림찾기의 비밀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문화자산을 물려받는다는 것
토착화한 망자를 위한 노래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먼저 온 미래’ 영도에서 2030 부산 해법 찾기
‘부산’이라는 아이 어떻게 키우겠습니까
도청도설 [전체보기]
마스크 안 벗는 이유
남천삼익비치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너무나 완벽한 음식 식해
여러분 모두 미식가 되세요!
사설 [전체보기]
가덕경제자유구역, 전제는 순조로운 공항 건설
치솟는 연료물가 먹거리물가…체감물가 겹고통
세상읽기 [전체보기]
부산진 수상비행장을 아세요?
자동차산업, 정의로운 산업전환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 지출의 원칙과 난방비 지원
의사 인력 확충의 올바른 방법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새로운 해양시대
노아 방주의 실천적 교훈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수평선을 바라보며 동백꽃을 사랑하며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한반도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하고 있다
위태로운 중국의 미래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신정과 설날 사이의 단상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다시 블랙리스트
정치인의 언어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근고지영
단석산 신선사의 목탁소리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새해엔 선거개혁 위한 결단 기대한다
정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이태원 연가
특별기고 [전체보기]
내 고향은 부산입니더!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노엘합창단
절대음감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당 김은호의 ‘매란방’
풍곡 성재휴의 ‘배암 나와라’
CEO 칼럼 [전체보기]
초고령 선진국에 걸맞은 변화
자율주행의 위기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