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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고양이는 모두 어디로 갈까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0-09 19:14:2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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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봐! 들뜬 목소리가 발길을 잡아끈다. 여기!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검은 털뭉치 몇 개가 올망졸망 흩어지고 모이다가 다시 흩어진다. 저녁마다 걷는 아파트 산책로 동쪽 모서리 경사면 풀숲이다. 주먹만 한 새끼 네 마리를 거느린 검은 고양이가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달아나지 않는 것을 보면 어미는 사람이 딱히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하기야 어미도 이 아파트에서 나고 자랐을 테니. 그렇지만 아기 엄마의 경계본능이 어린 새끼들을 불러 모은다.

오래된 아파트 정원에 많은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마다 영역이 있다. 오동과 사동이 직각으로 만나는 곳은 고양이 삼각주다. 등받이 없는 긴 나무 벤치 세 개가 삼각 구도로 고양이 영역의 경계를 만들어준다. 검은 고양이와 노랑 고양이, 얼룩 고양이가 삼각형 세 모서리처럼 앉아 밥을 기다린다. 캣맘, 고양이 집사가 밥을 들고 올 시간이다.

팔동 앞 정원은 일층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자기 집 앞을 가꿀 수 있게 되어 있다. 일층과 정원 사이에 세대별로 나 있는 철계단은 고양이들 차지다. 오늘 보니 검은 아기고양이들과 비슷하게 자그마한 아기고양이 몇 마리가 큰 갈색 얼룩 고양이 두 마리 근처에서 꼬물거리며 돌아다닌다. 새벽마다 짝을 찾아 날카롭게 울어 젖히며 잠을 방해하더니 결국 짝짓기에 성공해서 가족을 이룬 고양이들이 신통방통하다.

홀로 존재하는 고양이들도 있다. 오동 첫 라인 일층 정원에 자리 잡은 얼룩 고양이는 덩치만 커다란 터줏대감 같다. 에어컨 외기 위에 올라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클로버 샤프란 맥문동이 섞여 있는 풀밭을 철없이 풀쩍거리며 뛰어다닌다. 담장의 서쪽과 남쪽이 만나는 모서리 안쪽에 자리 잡은 바위 고양이는 의젓하다.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대신 큰 바위 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마치 절벽 위의 라이온 킹 심바 같다. 아파트 정원 전체가 그의 왕국인 것처럼 굽어본다. 고독을 즐기는 것일까.

서둘러 어미로부터 독립했을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떠나야 했을까. 지난여름 남쪽 정문 앞 소나무 밑에 자리 잡은 아기고양이는 혼자 살기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맥문동이 둥글게 자라 흡사 새둥지 같은 소나무 아래에서 아기고양이는 갓 부화한 아기새처럼 작은 목소리로 야옹거렸다. 비어있는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비를 피하던 아깽이가 어느새 중고양이가 되었다.

주차된 차 밑에서 자주 발견되는 아스팔트 킨트는 겁이 많았다. 어쩌다 제 영역을 자동차가 오가는 주차장으로 삼았을까. 누런 눈꼽이 눈물자국처럼 꾀죄죄하게 붙어 있고 사람 기척이 날 때마다 화들짝 자동차 밑으로 숨더니 요즘은 놀라지도 않고 제법 여유 있게 어슬렁거린다.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눈을 돌리기는커녕 빤히 마주 바라본다. 저도 컸다는 거지. 저도 이곳 주민이라는 거지. 어쩌면 승용차 엔진실에 갇혔던 고양이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승용차의 엔진실이었다. 자동차 보닛 위에 앉아있기를 좋아하더니 어떻게 들어갔는지 아무리 해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119 소방차가 와서 해방시켜주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고양이족이 있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장화는 무슨 색일까. 나의 동화에서는 흰 장화다. 멋쟁이는 흰 구두를 신는다. 검은 프록코트에 흰 장화를 신은 신사 고양이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잘 생겨서 누가 데려갔을까. 흰 장화를 신고 초록 풀밭을 걸어 다니면 정말 멋있었는데.

재건축 시행사 결정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이주가 시작되면 고양이들은 어디로 갈까. 등나무 옆 그네 고양이는, 유치원 놀이터 시소 고양이는 이주가 무언지도 모를 텐데. 아파트가 헐리고 오래 살아온 세계가 어느 날 갑자기 폐허가 되면 얼마나 난감할까.

어미 고양이의 예민함을 모르는 아깽이들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비탈진 언덕을 구르고 꼬리를 흔들어댄다. 검은 고양이 다섯 마리가 노는 모양을 한참 지켜보는데. 포스터의 옛노래 ‘켄터키 옛집’이 허밍으로 흘러나온다. 어려운 시절이 닥쳐오리니, 잘 쉬어라 고양이들아.

최정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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