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해전과 노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에게 임진왜란 처음과 끝일 수 있다. 지난주, 두 해전 전적지를 답사하며 든 생각이다. 물론 조선 수군 위용을 과시하며 전쟁 물줄기를 바꾼 첫승, 옥포해전을 빼놓을 수 없다. 바람 앞 촛불 같던 조선의 운명이었다. 옥포에서 사천을 거쳐 한산도대첩과 부산포해전에 이르는 이순신 장군의 필승 전략과 전과가 이를 지키는 버팀목이었다. 특히 사천해전은 거북선을 처음 출전시킨 데다 장군이 적군의 탄환에 부상을 당해 전쟁 기간 내내 고초를 겪었던 터라 각별하지 싶다. 그 상처는 조선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지를 일깨우는 무거운 짐이었음에 틀림없다.
노량해전은 임진왜란의 대미이자 이순신 장군이 영웅에서 성웅으로 추앙받는 계기가 되었다. 7년에 걸친 전쟁을 승리로 끝내고자 도주하는 왜군을 쫓던 장군은 관음포에서 “지금 전쟁이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고 알리지 마라”(戰方急 愼勿言我死·전방급 신물언아사)는 유언을 남기고 전사했다. 역사학자 정인보는 “명장보다도 성자(聖者)”라고 정의했다. 장군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에서 ‘이락파’(李落波)라 불리는 관음포 바다는 핏빛이 아니라 쪽빛이었다.
사천해전은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한산-용의 출현’ 첫머리를 장식하며 한산도대첩으로 이어진다. 이 해전 승첩 기념비는 왜군이 주둔했던 사천 선진리성에 있다. 1978년 건립된 이 기념비엔 거북선이 안 보이고, ‘이충무공사천해전승첩기념비’란 글자 중 여러 자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거북선 출전 사실이 1979년 확인되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옹색한 기념비 모습이 아쉬웠다.
그보다 마음을 무겁게 한 건 선진리성에 이웃한 ‘조명군총’(朝明軍塚)이었다.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결전을 벌이다 희생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무덤이다. 경상도 우병마사와 명나라 장군이 지휘하는 아군 진영에서 발생한 화재를 틈탄 적의 역습으로 생긴 비극의 현장이다. 왜군은 희생자들의 귀와 코를 베어 갔다. 이순신 장군이 적을 한 명이라도 놓치지 말자며 죽기 살기로 노량해전에 임했던 배경을 짐작게 한다. 전쟁에 삶이 망가지는 백성과 아낌없이 목숨을 바치는 숱한 병사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태도다.
“그는 한갓 제사나 받는 우상적 위치에 계심으로써 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생활 속에 들어와 살아 움직이고 실천되어야 할 지도 정신인 것이며, 또 그는 다만 한국 민족만이 받들어야 할 작은 범위의 국내적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국제적으로 널리 선양되어 모든 인간들의 의범(儀範)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보다 더 차원이 높은 인물”이란 사학자 이은상의 평가가 그래서 나왔을 터이다.(‘난중일기’ 지식공작소 2014)
여기서 ‘우리들의 생활 속에 들어와 살아 움직이고 실천되어야 할 지도 정신’에 주목한다. 이순신 정신이다. 격동의 바다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말없이 흐르지만, 임진왜란 당시 삶이 짓이겨진 사람처럼 오늘도 삶이 버거운 이가 많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건 이순신 정신을 통해 비극을 극복하고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답사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을 다룬 강남주 소설 ‘비요’의 무대를 찾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날 강 작가는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개인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마멸되고 있나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역사의 현재화라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해결하는 지도 정신, 시대 정신으로서 이순신 정신은 무엇일까. 남송우 이순신학교 교장은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꼽은 사랑과 정성, 정의와 자력을 제시했다. 자기를 넘어 남을 품고, 궁극적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순신 행적이 바로 사랑이다. 죽음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힘, 삶에 지쳐 포기하려는 사람을 끝까지 배려하는 마음이다. 장군은 임란 1년 전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뒤 임란 하루 전 거북선을 완성한다. 할 수 있는 힘을 다 쏟는 게 정성이다. 정의는 영화 ‘한산’에서 제시한 ‘정의와 불의의 전쟁’이란 화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자력은 스스로 힘으로 어려움을 개척해 나가려는 자세다. 이순신의 자 여해(汝諧)에 그런 네 가지 속뜻이 숨어 있다. 중국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나라를 물려주며 ‘오직 너(汝)가 세상을 화평하게(諧) 하리라’고 했다지 않나.
이제 이순신 정신은 오롯이 부산의 과제다. 내일 부산시민의날은 부산포해전 승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1592년 음력 9월 1일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왜선 104척을 격파한 날을 양력으로 환산했다. 장군은 “이만큼 성과가 큰 전투는 없었다”고 자평했다. 시민사회에서 이순신을 연구할 때 정작 부산시는 뭘 했는지 묻고 싶다. 이순신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부산 리더십을 기대한다. 부산시장과 부산 정치권 학계 경제계가 발벗고 나설 일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