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는 ‘설계수명’이라고 알려진 ‘운영허가 기간’이라는 것이 있다. 정해진 기간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서는 최초 운영허가 기간을 40년으로 정해 놓았는데, 이는 원자력발전소의 수명 때문이 아니라 발전사업자의 경제적 독점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미국에서 원전 기술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design life’를 직역하며 설계수명으로 굳어져, 40년이 경과되면 발전소가 수명을 다해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또한 원전의 경우 주기적인 예방정비 과정에서 최신 기술을 적용해 정비하고 부품을 교체하고 있고,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된 원전에 대해서는 설비 보강과 규제기관의 안전성 검증을 통해 운영허가 기간을 갱신하는 ‘계속 운전’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이는 명확하게 데이터로 증명된다. 2021년 기준 전 세계에서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된 242기의 원전 중 93%인 224기의 원전이 계속 운전을 했거나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최초 40년 운영허가를 받은 가동 원전 93기 중 85기가 20년 운영기간 연장을 허가 받았고, 이 중 6기는 추가로 20년 연장을 승인받아 총 80년을 가동하게 된다. 프랑스는 운영허가 기간 종료 이후, 영국은 운영허가 기간 없이 10년마다 원전의 안전성을 평가해 횟수에 제한 없이 운영기간을 연장해 주고 있다.
국가 자산인 에너지 설비의 효율적인 사용과 신규원전 건설에 비해 현저히 낮은 비용 등을 고려해 볼 때도 계속 운전은 필수 옵션이 되고 있다. 2021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NEA(Nuclear Energy Agency·원자력기구)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계속운전에 따른 발전 비용이 신규 원전 건설뿐만 아니라 풍력·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보다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질적 측면에서도 앞선 운영기간 축적된 발전소 운전 경험과 관리능력, 설비 개선 등으로 운영 능력과 안전성이 더욱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 20일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전을 공식 포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미 올해 초 유럽연합은 EU 그린 택소노미에 원자력발전을 포함시켰으며, 이후 유럽의회에서도 해당 안을 가결시킨 바 있다.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을 보면 ‘SMR(소형모듈원전), 방사성폐기물을 최소화하면서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차세대 원전, 방사성폐기물 관리, 우주·해양용 초소형 원전, 내진성능 향상 등 원전 안전성·설비신뢰도 향상을 위한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과 관련된 제반 활동’은 ‘녹색 부문’에 포함됐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K-택소노미에 대해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로운 활용을 통해 2050 탄소중립 실현을 기대한다”고 말해 원전은 탄소중립시대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인 에너지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년 4월 고리원전 2호기를 시작으로 2029년까지 10개 호기의 원자력발전소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된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2호기 계속 운전을 위해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초안에 관한 공람을 통해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공람을 진행한 바 있고, 이 과정에서 제기된 지역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방사선 환경영향평가를 보완해 추가 공람을 시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자체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향후 공청회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원자력발전소의 계속운전은 당위성과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국민적 공감대 또한 중요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법에 따른 주민 의견수렴을 넘어 추가 공람을 하겠다는 사업자의 결정은 향후 계속 운전 사업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국민 소통과 정보공개에 대한 사업자의 이러한 태도와 의지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할 후속원전 계속 운전 사업뿐만 아니라 신규 원전인 신한울 3·4호기 건설 같은 각종 원전 사업에 관해 국민적 지지를 끌어내길 기대한다. 또한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운영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원전이 수명을 다했다는 오해에서도 벗어나길 바란다.
윤병조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