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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아베를 통해 본 우리 민낯

전쟁 가능한 국가 건설, 일본 보수의 으뜸 과제…인권·자유 등 훼손 우려

헌법 개정 현실화 난망, 한국도 시민권리 취약

  •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
  •  |   입력 : 2022-09-26 19:28:18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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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 달여 전 피살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국장일이다. 아베는 죽었지만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그의 신념은 건재하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뜻을 이어받아 가능한 빨리 개헌안을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했다. 개헌안 발의는 무난히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 이어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 등 개헌을 지지하는 4개 당의 의석이 개헌안 발의 요건인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넘었기 때문이다. 살아서 이루지 못한 아베의 소원이 죽어서 성취될지 궁금하다.

아베 사후 일본의 변화를 예견하긴 어렵지만, 전쟁 가능한 국가 건설에 무게가 실린 건 분명하다. 이는 아베만이 아닌 일본 보수 진영의 열망이다. 여기에는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보수의 역사가 압축돼 있다. 원조는 정한론(征韓論)의 선구자인 요시다 쇼인(1830~1859)이다. 그는 “국력을 키워 뺏기 쉬운 조선·만주·중국을 복종시키고, 교역에서 러시아·미국에게 잃은 것은 조선·만주·중국으로부터 충당하자”고 주장했다. 요시다의 제국주의론은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그의 제자들이 실천했다. 1894년 청일전쟁이 한 예다. 이토는 당시 총리를 맡아 조선 침략을 지휘했고, 야마가타는 군사령관으로 침략의 선봉에 섰다.

요시다·이토·야마가타는 모두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조슈번(현재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야마구치현이 일본 제국주의의 본산인 셈이다. 그 정치적 인맥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가쓰라 타로,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만주국 경영의 실질적 책임자로 조선인 강제동원에 적극 관여한 기시 노부스케를 거쳐 기시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에까지 이어진다. 이른바 ‘야마구치 시스템’이다. 요시다·이토·야마가타가 식민지 수탈을 통해 후발 제국주의 국가 일본을 열강의 반열에 올려놓으려 했다면, 기시와 아베는 그 목적 달성에 실패한 자국을 패전 전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서다.

아베는 1993년 중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개헌 포부를 뚜렷이 밝혔다. 2006년 총리가 되어 1차 내각을 출범시키며 내건 슬로건도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脫殼)’이었다. 그는 “종전 후 점령군(미군)이 만든 틀에 속박돼 있다. 이 전후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진정한 일본의 모습으로 돌려놓지 못한다”고 했다. 2013년에는 총리 신분으로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기도 했다. 2020년 지병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날 땐 “헌법 개정을 목표로 하는 와중에 그만두게 돼 단장(斷腸)의 심정”이라고 했다.

개헌안 발의는 첫 단계일 뿐이다. 개헌 여부는 국민투표에서 결정된다. 국민투표를 통과하려면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62%에 달하는 아베 국장 반대 여론을 미루어 짐작건대, 과반 찬성 확보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21일에는 도쿄에서 국장에 반대하는 70대 남성이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국장 반대 여론에는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다. 미야마 준이치 주오대 교수는 “국장은 천황(일왕) 아래 국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고, 태평양전쟁 시절에는 전쟁 동원의 장치로 이용됐다”며 정권의 국장 악용 가능성을 우려했다.

태평양전쟁 이전 국장에 관한 법이 있었지만 전후에 폐지됐다. 기시다 총리가 법적 근거 없이 국장을 강행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일본 국민은 이를 보며 천황 중심의 전제 정치 속에서 자유·민주·인권 등 보편적 가치가 말살된 제국주의 시절의 고난을 떠올린다. 민심은 아베 사후의 일본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지 않길 염원한다. 아베 국장을 결정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29%로 추락했다.

우리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피해자보다는 가해자를 먼저 생각하는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배상문제 접근방법이 그렇다.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측에 사전 통보도 없이 일본 가해기업 자산의 강제매각(현금화)을 늦춰달라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저버린 행위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우려하는 주권 문제 충돌없이 채권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대법원의 판결대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인데,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 성과에 급급해 피해 구제는 뒷전이다. 피해자의 인권과 법적 권리도 안중에 없는 듯하다. 정부는 국민 위에 군림한다. 민주는 빈껍데기로 전락할 판이다. 아베는 “종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는 지어낸 이야기”라며 배상을 거부했다. 기시다도 같은 입장이다. 정부는 일본 페이스에 끌려다닌다. 피해자는 부평초 신세다. 아베를 탐구하다 확인한 우리 민낯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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