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에서 ‘수원 세 모녀’ 사건을 언급하며 ‘약자 복지’를 강조했다. 이는 대선 공약인 ‘약자와의 동행’과 맥락이 같은데, 경제·사회적 약자에게 필요에 상응하는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공동체의 해체를 막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정치·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정의롭게 합의될 수 있을 만큼의 복지 혜택을 가장 어려운 계층에게 제공함으로써 약자들의 인간적 삶을 보장하자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윤 대통령의 ‘약자 복지’는 진보·보수 진영과 여야 정치권이 모두 동의·합의할 수 있는 공통 의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약자 복지’에서 ‘약자’는 정태적 개념에만 머물지 않는다. 약자가 정태적 성격과 동태적 성격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심하거나 고령으로 근로활동이 불가능한 극빈자들은 이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로 보호받고 있다. 이들은 정태적 성격의 약자에 속하는데, 경제·사회적 여건의 변화가 거의 없고 수급자 상태도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은 기초생계의 보호 수준인데, 이에 대해서는 약자 복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기초보장을 빠르게 강화하는 게 옳다.
가령 생계급여 수급의 대상과 수준을 결정하는 ‘가구의 소득인정액 기준’을 현행 ‘기준중위소득의 30% 이하’에서 ‘40% 이하’로 확대하는 조치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해도 우리나라는 유럽 선진국의 ‘기준중위소득 50% 혹은 60% 이하’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 약자는 동태적 성격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니지만 여차하면 절대빈곤 상태로 추락할 수 있는 상대빈곤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9년 기준 상대적 빈곤율(기준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의 비율)이 16.7%로 4번째로 높았다. 참고로 선진 복지국가의 상대적 빈곤율은 5~10%이고, OECD 평균은 11.1%였다.
우리나라는 상대적 빈곤율이 이렇게 높음에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수급자가 전체 인구의 2.5%에 불과하다. 그래서 2019년 기준의 상대적 빈곤율(16.7%)에서 생계급여 수급자 비율(2.5%)을 뺀 수치, 즉 ‘비수급 상대빈곤 인구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2%나 된다. 이들은 경기변동·실업·질병 등의 경제·사회적 위험이 닥치면 언제라도 절대빈곤 상태로 추락할 수 있는 동태적 성격의 약자에 해당한다.
게다가 동태적 성격의 약자는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경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기존의 상대빈곤 인구뿐만 아니라 서민과 중산층에 속한 사람들도 짧은 기간에 극빈자의 처지로 내몰리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등으로 일하거나 자영업 등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던 서민과 중산층 가구가 경제적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이것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언론에 더 자주 보도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태적·동태적 성격의 모든 약자를 선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시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약자 복지를 위한 ‘보편적 복지’ 강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복지국가의 사회보장 원리로서 ‘누구라도’ 각종 재난·실업·질병·산재·은퇴·출산·육아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 소득의 단절이나 급격한 감소를 겪거나 혹은 생의 주기에 따라 각종 사회서비스가 필요할 때 사회안전망과 복지 체제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여기서 ‘누구라도’가 중요한데, 이는 정태적 성격의 약자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절대빈곤 상태로 추락할 수 있을 상대빈곤·서민·중산층 등 동태적 성격의 잠재적 약자를 포함한 사회구성원 모두가 복지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누구라도’ 4대 사회보험 등 보편적 사회보장을 향유하고 근로를 통한 자립적 경제생활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보편적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빈곤층으로 떨어질 확률이 낮아지는데, 이는 동태적 성격의 약자를 위한 선제적·예방적 대응에 속한다. 송파 세 모녀, 성북 네 모녀, 수원 세 모녀 사건에서 선제적·예방적 성격의 보편적 복지가 중요한 이유는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게다가 다수 국민을 빈곤층으로 떨어지게 해놓고 일부를 발굴해 선별적 복지로 보호하는 방식은 효과·효율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도 않다.
그러니까 상대빈곤·서민·중산층이 절대빈곤이나 경제적 절망 상태로 추락하지 않도록 지지해주는 보편적 사회보장제도가 사각지대 없이 잘 작동하도록 해야 하고, 또 급격하게 경제적 위기에 처한 가구에 대해서는 대상자 발굴 시스템과 통·반장 중심의 주민 제보 체계를 강화하고 긴급 지원·상담과 금융·개인회생·직업훈련·일자리 지원 등을 포함한 포괄적·전문적 대응 체계를 읍·면·동사무소 중심으로 시급하게 확립해야 한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