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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의 와인 한 잔] 와인은 외로워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8-28 19:26:28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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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도둑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게 한다. “명백해 보이는 것들조차 달리 볼 수도 있다, 그 점에 비판을 가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은, 비판적 인식의 첫걸음이다.” -전영애의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가파른 경사면의 독일 모젤 지역 포도밭.
2022년 6월, 세계적인 인기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데뷔 9년 만에 단체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BTS와 아미(ARMY)의 활동으로 초래되는 일련의 변화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변혁을 넘어 세계를 뒤흔드는 혁명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인간으로, 예술가로 성장할 시간을 주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BTS 자신들의 메시지인 ‘LOVE YOURSELF’를 실천하기 위한 최선의 결정으로 여겨진다.

와인을 마실 때 음악을 듣는 것처럼 수동적으로 단지 감각을 즐기는 것을 드링킹이라고 한다. 마신다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이며 흔히 있는 행위, 우리의 일상이다. 반면 지금 마시는 와인이 어떤 와인인지 알기 위해 계획과 의도를 가지고 색깔 향 맛을 면밀하게 살피는 것을 테이스팅이라고 한다. 시음은 우리의 영혼에서 나오는 욕망이며 쾌락을 목표로 한다. 와인을 마실 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면 자신 안에 새겨져 있던 기억들이 와인의 맛과 함께 연상된다. 이렇게 와인을 즐길 수 있다면 처음 만나는 와인, 아무런 정보가 없는 와인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와인은 마실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인을 마실 때 그 와인에 대한 정보에 의존해 정해진 그대로 머리로만 마시는 경우가 많다.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유하며. 와인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사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와인 한잔 마시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항상 새롭고 행복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불안한가? 일상에 반복되는 상심과 회의적인 현실의 반대편에 있는 새로운 진실처럼 와인은 매일 반복되며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 속에서 저 깊은 곳에 있는 사유의 세계를 거닐 수 있도록 도와준다.

통일신라의 수많은 유산 중 가장 뛰어난 걸작품으로 에밀레종을 꼽는 이유는 그 안에 새겨진 훌륭한 문양이나 수준 높은 주조 기술이 아니라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소리와 여운이 느껴지는 긴 울림 때문이다. 와인을 마실 때도 마찬가지, 눈에 보이는 정보로만 와인을 평가하고 단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 시시각각 변하는 와인의 모든 복잡함과 풍요로움을 즐기고 느끼면서 감각적인 경험과 더불어 자신만의 주관적인 모험의 세계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자.

매일 같은 와인을 마셔도 마실 때마다 다른 향과 맛을 보여주는 와인, 와인에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홀로 마시는 와인 한잔의 외로움. 하지만 와인 잔 가득 넘쳐나는 향과 입안 가득 길게 느껴지는 여운으로 나의 외로움이 채워질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외로움을 즐길 만하지 않은가? ‘Wine is lonely’. 와인은 외로운 사람들이 마신다.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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