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당의 당대표 경선이 화제다. 소속 의원들이 2차 투표까지 진행한 결과, 5명으로 압축된 후보 중 2명이 소수인종·이민자 출신이다. 선두로 나선 리시 수낙(42) 전 재무장관은 아프리카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인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4위를 한 케미 바데노크 전 평등장관(여·42)도 나이지리아인 이민 가정의 후예이다. 수낙이 최종 승자가 될 경우, 사의를 밝힌 보리스 존슨 현 총리의 뒤를 잇게 된다. 영국에 사상 첫 소수인종·이민자 출신 총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놀랄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후보 5명 모두 40대인 데다, 그 중 3명이 여성이다. 95%가 영국계 백인이고, 남성과 50세 이상이 각각 63%와 58%에 달하는 보수당의 당원 구성을 고려하면 실로 경이롭다. 진보 정당인 노동당의 경선이 아닌지 다시 살펴보게 될 정도다. 보수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영국 현상’이라 특기할 만하다. 여기에는 보수당의 10여 년 변화 노력이 쌓여 있다. 시동을 건 이는 데이비드 캐머론 전 총리(2010~2015년 재임)다. 그는 2005년 39세의 나이로 보수당 대표가 된 뒤 비백인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섰다. 수낙과 바데노크의 정계 진출도 그 덕분이다. 캐머론 전 총리는 다문화 정치 추구 외에도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워킹푸어 문제 해결, 동성결혼 합법화 등 다양한 진보 정책을 펴 보수당의 지지도를 높였다.
보수당의 정치는 우리 정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정치인의 연령이 우선 눈에 띈다. 보수당의 주축은 30·40대다. 35세에 정치를 시작해 43세 때 총리가 된 캐머론이 그렇다. 캐머론과 비슷한 나이에 정치에 입문해 재무부 평등부 등 주요 부처의 장·차관을 지내며 역량을 갈고 닦은 뒤 42세에 나란히 당대표(총리)에 도전한 수낙과 바데노크 또한 그러하다. 젊은 정치인은 보수당의 혁신 동력이다. 우리는 이런 동력을 갖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가지려고 시도는 했지만 시늉에 그쳤다. 지난해 헌정 사상 첫 30대 당대표가 된지 1년만에 직무를 정지당한 이준석(37) 국민의힘 대표가 그 표본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에 의해 당대표 출마가 저지된 박지현(26) 전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도 마찬가지다.
당에 기여한 두 사람의 공은 크다. 이 대표는 지난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때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을 확보하며 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이에 자극받은 민주당은 ‘이대녀(20대 여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박 전 위원장을 영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십분 활용한 당은 선거가 끝난 뒤 이들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승리하고 난 뒤 바로 공격당했다”고 한다. 박 전 위원장은 “청년은 쓰고 버려지는 존재”라고 한다. 두 사람의 정치가 젠더 갈등을 낳은 건 문제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몫이다. 그리고 젠더 갈등의 근본적 책임은 당에 있다.
이들의 좌절에는 본인 책임도 있다. 이 대표는 성 접대를 받고 관련 증거를 없애려 했다는 의혹을 야기했고, 박 전 위원장은 대선과 지선의 잇단 패배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 대표의 혐의는 수사를 통해 입증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국민의힘이 징계 결정을 내린 건 납득하기 어렵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에 맞서다 제거됐다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전 위원장이 당대표 출마에 필요한 권리당원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민주당 지도부의 지적도 틀린 건 아니다. 그렇지만 민주당 일부 의원의 성비위에 대한 엄벌 주장 등 입바른 말을 하다 미운 털이 박힌 건 사실이다.
두 사람의 일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우리 정치권의 청년 홀대는 심각하다. 국회의원(4.3%)과 광역의원(9.5%), 기초의원(11.1%)의 20·30대 비중은 낮다. 국회의원의 경우 국제의원연맹 통계에 나오는 121개국 중 118위다. 광역단체장(17명)과 기초단체장(226명)에는 20·30대가 전무하다. 반면 20·30대 인구(1320만1180명) 비중은 25.6%에 달한다. 인구는 많은데 여론을 대변할 정치인은 적으니, 20·30대의 정치적 소외감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권은 별 관심이 없다. ‘청년정치’는 청년 표가 필요한 선거 때만 강조하는 한시적 구호일 따름이다. 청년정치가 시들면 기득권 세력의 입김이 커진다. 그렇게 ‘고인 물’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기득권 강화 정치에 대한 세평은 엄혹하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2%(갤럽 조사 결과)로 추락했다. 임기 초 각각 45%, 54%에 달했던 20, 30대의 지지율도 32%, 27%로 떨어졌다. 윤 대통령의 우군으로 여겨졌던 60대와 70대 이상 연령층의 지지율마저 각각 66%에서 39%, 73%에서 51%로 감소하는 등 민심 이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청년이 떠나니 노인도 떠난다.
이경식 논설위원